[현장에서] 대한항공이 아마존 같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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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지 기자
입력 2019-03-3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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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방식을 공유합니다. 성장하려면 다른 기업과는 다르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투자철학과 똑같나요."

아마존을 만든 제프 베이조스는 해마다 4월 주주에게 공개편지를 써왔다. 회사를 어떻게 이끌어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이끌지 하나하나 얘기한다. 아마존 주가는 상장 초기인 1997년만 해도 2달러도 안 됐다. 이제는 시가총액이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가장 크다. 베이조스는 회사를 이만큼 키울 때까지 주주에게 쓰는 편지를 잊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거꾸로 편지를 받았다.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공개서한으로 물었다. 한진그룹 총수인 조양호 회장 일가가 기업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보았고, 앞으로 그러지 않을 대책을 촉구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답장하지 않았다. 결국 조양호 회장은 얼마 전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져 대표이사 지위를 잃었다.

물론 소통 부족보다 직접적인 이유가 있었다. 조양호 회장 일가는 '땅콩 회항'이나 '물컵 갑질' 논란을 일으켰고, 횡령·배임으로 회사에 경제적인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그렇더라도 회사가 주주와 대화하려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가진 대한항공 지분보다 훨씬 적은 표 차이로 조양호 회장은 물러나야 했다.

다른 상장사도 지금껏 주주와 대화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2년 전만 해도 상장사는 섀도보팅(의결권 대리)을 이용해 손쉽게 의결정족수를 채웠다. 주주가 주총에 오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섀도보팅이 2018년부터 폐지돼 분위기를 바꾸었다. 1억원 넘게 들여 주총 위임장 대행업체를 고용하기도 한다. 주총 대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재계에서는 불만이 많다. 보완책 없이 섀도보팅을 없애는 바람에 경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이사나 감사를 뽑는 중요 안건이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원칙인 스튜어드십코드를 앞세워 경영을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도 과거로 회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도리어 일찌감치 적응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1분기 결산을 마치기 전 나쁜 실적을 미리 고백했다. 다른 해 같았으면 4월이 한참 지나서야 성적표를 내놓았었다. 주식시장에서 어닝쇼크 여파를 줄이려는 뜻으로 읽혔다. 회사는 연초 2018년 4분기 실적을 내놓을 때에도 과거보다 신경을 많이 썼다. 매출이나 영업이익만 밝히는 대신 자세한 설명을 담은 첨부파일을 제공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혼선을 완화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조스는 회사를 상장하면서 긴 안목으로 투자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신 그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게 주주와 대화할 기회를 꾸준히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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