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스페셜 칼럼]브렉시트·트럼프 국경장벽·미세먼지의 공통점… '열린 세계화와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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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찬 경제학자 • 카이스트 교수
입력 2019-03-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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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문제들은 국경을 넘고있는데, 흐름 못읽는 '우물안 사고'의 리더들…한국은 어떤가

[채수찬 교수]

보잉737 맥스8 기종의 여객기가 작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추락한 뒤 최근 에티오피아에서 또 추락하자 많은 나라들이 안전을 우려하여 동일 기종의 운항을 중단시켰다. 제조업체인 보잉사가 속한 미국 정부는 사고기종의 안전성을 신뢰한다고 버텼지만 캐나다가 사고기종의 자국 영공 통과를 금지하자 결국 운항 중단을 명령했다. 항공기는 새와 마찬가지로 미국 영공만을 나는 게 아니라 전세계를 날아 다닌다. 미국 정부가 허용해도 다른 나라 정부가 금지하면 운항할 수가 없다.

2008년 금융위기가 촉발되어 미국 은행들이 어려움에 빠지자 미국 중앙은행은 유럽중앙은행에 SOS를 치고 사태 대응에 공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동안 미국 중앙은행이 큰형 노릇하는 게 내심 못마땅했던 유럽중앙은행은 선뜻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흘 만에 다급히 돌아서서 공조하자고 나왔다. 돈은 전세계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유럽은행의 돈이 유럽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미국금융시스템이 곤경에 빠지면 유럽은행들도 곤경에 빠진다. 유럽중앙은행을 이끄는 사람들도 세계화된 금융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한국사람들은 최근 미세먼지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 상당부분이 바다 건너 중국에서 넘어오고 있다. 한국정부가 중국정부에 이 문제에 대해 협의하자고 하자 중국정부는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온다는 증거가 없다고 발뺌했다.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항공기든, 돈이든, 미세먼지든 국경을 넘어 다니는데 이를 관리하는 규제권한은 각 나라들에 나뉘어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활동들에 대해 서로 다른 주권국가들의 정책과 규제가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자주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활동들에 대한 지배구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되었으나 이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 이제 중요한 이슈들은 국가간 문제라기보다 세계의 문제가 되었다. 세계화된 세계를 규율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유엔(UN)이 있지만 국제정치의 갈등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있지만 무역 갈등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국제 금융기구들도 이제는 개혁되어야 될 구체제의 일부로 생각되고 있다.

지금은 백가(百家)의 사상가들이 새로운 시스템을 구상하고 설계할 때다. 새로운 시스템으로 가려면 접근법을 달리해야 한다. 세계정부는 현재로서 비현실적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세계를 하나로 보고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실행해야 될 일을 마련하고, 정치적 합의를 형성한 뒤, 각 국가 정부들의 역할을 나누는 틀을 만드는 게 큰 방향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된 세계에서 국경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새로이 생각해봐야 한다.

세계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와 이미 세계화 된 세계의 새로운 문제가 섞여서 작금의 세계는 혼란스런 상황이다. 세계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중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이슈는 이민 문제다. 사람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이민문제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도, 영국의 유럽연합탈퇴(Brexit)를 둘러싼 내홍도, 독일 정치에서 메르켈의 퇴조도 그 뿌리에는 이민 이슈가 있다.

전통적 경제이론에서 보면 이민은 노동의 이동이다. 국제무역에 대한 고전적 이론의 하나로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라는 게 있다. 국가간 노동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노동의 산물인 상품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면 노동의 이동과 마찬가지 효과가 있다는 이론이다. 더욱이 이제는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재택근무로 국내뿐만 아니라 국경 밖의 다른 나라에 있는 직장의 업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가 이주하지 않고도 노동서비스의 이동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면 작금의 이민문제는 왜 일어나고 있는가. 이민은 단지 생산요소인 노동의 이동이 아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이동이라는 측면이 있다. 난민사태에서 보듯이 때로는 생존을 위한 이동이기도 하다. 중동 무력분쟁의 장기화, 중남미 경제상황 악화 등으로 대량 이민이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이민자와 기존 거주자들 사이에 이해충돌뿐만 아니라 문화적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화 과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세계화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정치가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 정치는 국내정치인데 해결해야 할 문제는 세계문제이니 문제와 수단 사이에 큰 간극(mismatch)이 현존하고 있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랜 영국이 유럽연합탈퇴 문제를 국내정치에서 소화하지 못해 무력하게 표류하고 있는 걸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한국정치도 세계화에 따른 업그레이드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국제 무대에 나가 발언하는 걸 보면 한국문제만을 얘기한다. 세계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기술과 경제는 10대 선진국 수준이 되었음에도 지도자들이 세계를 보는 눈은 아직도 개발도상국 때와 다름없이 자국의 이슈에만 매달려 있다. 일본도 중국도 마찬가지다. 경제는 세계 2-3위 수준으로 맷집이 커졌으나 자국 지향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리더가 되지 못하고 있다.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에서 미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세계질서의 중심에서 맏형 노릇을 해왔으나, 세계화가 진행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혁을 국내정치적으로 소화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미국의 맏형 역할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동생들에게 세계화에 따른 부담을 이제 나누어 갖자고 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세계화와 혁신은 세계 경제를 이끌고 가는 두 축이다. 그런데 둘 다 기존 질서를 타파하는(disruptive) 속성이 있어 정치적 문제들을 일으킨다. 둘 중에 세계화가 정치적으로 휘발성이 더 강하다.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세계화는 축복이 아니라 골칫거리가 된다. 세계화된 세계에 걸맞은 문제해결 시스템은 아직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각 국가의 정치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진=보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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