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빈농 출신 中 최고 갑부, 일론 머스크를 꿈꾸다

이재호 특파원입력 : 2019-01-23 17:38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 야심찬 도전 전기차사업 진출, 성패 전망 엇갈려

쉬자인 중국 헝다그룹 회장이 지난해 3월 양회 때 정협 상무위원으로 재선출된 이후 인사하고 있다.[사진=신화통신]


지난 15일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그룹의 자회사 헝다젠캉(홍콩 증시 상장사)은 스웨덴의 전기차 기업 NEVS 지분 51%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고 공시했다.

NEVS는 스웨덴 자동차 브랜드인 사브의 자산을 인수한 뒤 사명을 바꾼 기업이다. 중국 언론들은 헝다가 '북유럽의 BMW'를 품게 됐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쉬자인(許家印) 헝다그룹 회장은 부동산 업계 맞수인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을 밀어내고 중국 최고 부호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지속 성장 가능성에 의구심을 품은 쉬 회장은 전기차 등 첨단기술 분야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점찍었다.

쉬 회장은 공산당에 충성하는 '홍색 자본가'를 자처한다.

쉬 회장의 자금력에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해진다면 '중국판 테슬라'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반면 헝다그룹의 권위적인 경영 방식이 첨단 산업과 어울리지 않는데다, NEVS의 기술력으로는 전기차 시장 석권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공존한다.

◆비천한 운명에 반항한 농민

쉬 회장은 1958년 허난성에서 가장 가난한 '거지 마을' 타이캉현에서 태어났다.

만 한 살이 되기 전 모친이 패혈증으로 사망해 식초를 만들어 팔던 할머니가 그를 키웠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읍내를 구경한 뒤 절대로 농민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별수 없이 농사일로 연명했다.

1977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대학입학시험이 부활하자 이듬해인 1978년 우한강철학원(현 우한과학기술대) 금속재료학과에 진학했다.

쉬 회장은 "밭에서 김을 매고 분뇨로 비료를 만드는 일은 계속 할 수가 없었다"며 "곰팡이가 핀 옥수수빵을 먹으며 공부해 대학에 입학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허난성 우양강철공사에 입사한 뒤에는 단기간 내에 3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관리하는 주임으로 승진할 정도로 수완을 발휘했다.

스스로 '생산관리 300조'라는 규정을 만들어 사내에 보급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34세 때인 1992년 광둥성 선전의 부동산 개발업체인 중다그룹으로 이직했다. 처음 맡은 개발 사업에서 당시 돈으로 1억 위안(약 165억원) 이상의 이익을 거뒀다. 유행하던 중대형 아파트 대신 소형 아파트를 저가에 공급한 전략이 주효했다.

개혁·개방 정책이 추진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한 광둥성 부동산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쉬 회장은 "용적률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어 하나씩 배우며 사업을 진행했다"며 "당시 월급이 3000위안이었는데 연봉이 10만 위안만 됐어도 창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헝다그룹을 창업한 이후 본격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헝다그룹 전 임원은 "창업 초기 새벽 6시에 퇴근하고 오전 9시에 다시 출근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2008년 112억 위안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100억 클럽'에 가입했지만 첫 상장 도전에서 실패를 맛봤다.

홍콩으로 건너간 쉬 회장은 홍콩 3대 부호로 꼽히는 청위퉁(鄭裕彤) 뉴월드그룹 회장을 비롯해 양서우청(楊受成) 엠퍼러그룹 회장, 장쑹차오(張松橋) 중위즈디 회장 등 중화권 재벌 모임인 '다D후이(大D會)' 멤버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9년 11월 홍콩 증시 상장에 성공했고, 점차 중국 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쉬 회장은 "나는 단지 스스로의 비천한 운명에 반항한 농민이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뒷줄 오른쪽 둘째)이 대학 졸업 후 허난성 우양강철공사에서 근무할 당시의 사진.[사진=바이두 캡처]


◆헝다의 모든 것은 당과 국가가 줬다

지난해 9월 발표된 중국 500대 민영기업 명단에서 헝다그룹은 7위를 기록했다. 상위 10위권 내 유일한 부동산 기업으로 매출액은 3110억 위안(약 51조4300억원)이었다.

반면 2017년 9위였던 완다그룹은 17위로 급락했다.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은 정권 실세를 뒷배로 두고 있다는 루머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호텔·리조트 등 핵심 자산을 대거 매각하며 회사 살리기에 매진하는 중이다.

중국 부호 순위도 요동쳤다. 부동의 1위였던 왕젠린 회장이 4위로 밀렸고, 2813억 위안의 자산을 보유한 쉬 회장이 1위로 뛰어올랐다. 마화텅 텐센트 회장이 2위(2581억 위안),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3위(2555억 위안)다.

지난해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기업 전진 민영기업 후퇴)' 논란이 한창일 때도 쉬 회장과 헝다그룹은 건재했다.

2010년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한 쉬 회장은 "헝다의 모든 것은 당과 국가, 사회가 준 것"이라며 "먼저 부자가 됐으면 응당 다른 이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중국의 민영기업인 중 최초로 정협 상무위원이 된 데 이어 지난해 양회 때 재선에 성공했다.

헝다그룹은 2009년 쓰촨 대지진이 발생하자 자금난 속에서도 1000만 위안의 성금을 쾌척해 화제가 됐다.

또 다른 부동산 재벌인 완커그룹의 왕스(王石) 회장은 200만 위안을 낸 탓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쉬 회장은 2010년 광저우의 프로축구팀을 인수한 뒤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2011~2017년 중국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공식적으로 격려했을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전기차까지 품었지만...

쉬 회장은 오는 2020년까지 연 매출 8000억 위안, 총 자산 3조 위안 달성을 목표로 하는 '신(新)헝다'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4월에는 중국과학원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인공지능·로봇·신재생에너지·집적회로 등에 향후 10년간 1000억 위안을 투자하기로 했다.

사업 영역을 첨단 산업 분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특히 성장 잠재력이 큰 전기차 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첫 시도로 '중국판 테슬라'를 표방한 전기차 업체 패러데이퓨처(FF)에 8억60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 45%를 확보했다.

하지만 FF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자웨팅(賈躍亭)과의 알력 다툼 끝에 합작을 포기했다.

올 초 FF와의 법정 다툼이 끝나자마자 헝다그룹은 NEVS 인수를 발표했다.

2012년 사브의 주요 자산을 인수하면서 설립된 기업으로 중국 내 전기차 공장 설립 인가를 받은 첫 외국계 기업이다. 연산 5만대 규모의 톈진 공장을 운영 중이며 상하이 공장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헝다그룹은 9억3000만 달러에 NEVS 지분 51%를 확보했고, 1억5300만 달러를 주주대출 방식으로 투입하기로 했다.

NEVS를 품에 안은 헝다그룹의 미래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당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비야디(BYD)를 능가하는 전기차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제기한다.

상하이에 공장을 지으며 중국 대륙에 새 둥지를 튼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진검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반면 프로축구팀 광저우헝다를 운영하는 것과 전기차 사업을 키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자금을 쏟아부어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헝다그룹의 권위적인 조직 문화가 첨단 산업 육성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흥미롭다.

헝다그룹은 벨이 3번 울릴 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은 직원에게 벌금을 부과한다. 부사장급 임원이 샤워를 할 때 부인에게 휴대폰을 들고 대기하게 할 정도로 사내 규율이 엄격하다.

한 직원은 엘리베이터에서 사과를 먹다가 쉬 회장과 맞닥뜨려 사표를 쓰기도 했다. 기율이 산만하다는 게 이유였다.

중국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선 쉬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의 도전은 중국 전기차 산업의 부흥으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실패 사례로 남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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