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꿈톡 강주원 수장 "꿈톡이 청년이 소통하는 장으로 계속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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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기자
입력 2018-12-1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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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호이의 사람들>의 발로 뛰는 CEO 김호이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공간의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이번 인터뷰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공간 꿈톡의 강주원 수장의 인터뷰 인데요.

책 한권으로 시작해서 공간으로 이어진 물물교환과 지금의 꿈톡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담아냈습니다.
 

Q. 꿈톡의 소개부탁드릴게요!

A. 꿈톡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소통으로 행복해지는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청년들의 소통의 장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청년문화기획단체예요.

Q. 자신을 대표가 아닌 수장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가 있나요?

A. 대표는 어느 한 단체를 대표하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제가 꿈톡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거든요. 예전부터 대표라는 타이틀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대신에 꿈톡을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해서 하나의 별명처럼 수장이라고 지었어요.

Q. 3년간 5번을 퇴사한 걸로 알고 있는데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나요?

A. 다섯 번 다 정규직을 한건 아니에요. 정규직은 두 번이었고 나머지는 계약직 같은 거였는데 직장을 많이 옮겨 다녔죠.

근데 퇴사를 많이 할 때보다 직장을 다닐 때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여기서 일을 하면서 진급을 하고 임원이 된다고 한들 행복할까?” 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닌 거예요. 그래서 퇴사를 했죠.
 

[사진= 강주원 수장 제공 ]

Q. 어떻게 보면 회사를 다니면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꿈톡이라는 행복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불안은 할 거 같아요. 그렇다면 다시 회사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나요?

A. 제가 느끼기에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되게 불안하게 느껴졌거든요. 저도 예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고정적인 월급을 받을 때는 오히려 불안했는데 지금은 수익적으로는 불안정할 수 있지만 마음 상태는 예전보다 굉장히 안정 적이에요.

나중에 회사에 다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회사에 들어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회사 다닐 때 월급이 고정적으로 나온다는 것 외에 다른 모든 게 불안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지금이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해요.

Q. 사람들이 주변에서 “남들은 다 평범하게 사는데 넌 왜 그렇게 유난을 떨어”라고 했을 때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무엇인가요?

A. 저는 유난 떨거나 남들보다 튀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강주원이라는 사람의 성격인 거예요. 제 성격이나 이런 걸 비춰봤을 때 남들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게 저한테는 굉장히 평범한 거였어요.

오히려 저는 “이걸 어떻게 버티지”하는 이런 생각 때문에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는 사람들이 특별해보이고 독특해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남들이 이런 얘기 할 때마다 “나는 별로 유난 떨고 싶지 않다” “그냥 내 삶을 사는 거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Q. 강주원 대표가 지금 수장을 맡고 있는 꿈톡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A. 2012년부터 제 나이 또래 친구들을 만나서 그냥 카페에서 고민을 들어주는 작은 모임 같은 걸 했었는데 이걸 하다 보니까 갑자기 어떤 친구가 “내 얘기 말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도 같이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만났던 친구들, 저 그리고 제 친구들과 함께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려주자”라는 식으로 대학교 강의실 하나를 빌려서 청중 20명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했는데 이게 꿈톡의 시작이에요.

Q. 수많은 일들이 있는데 그것이 꿈톡 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사실 꼭 꿈톡이어야 했던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고 무언가를 시작을 하는데 저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계획이나 목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대부분 하다보니까 이루어졌어요.

어쩌다 하다보니까 꿈톡이란 걸 처음 시작하게 됐고, 하다보니까 이게 너무 즐거워서 계속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지금 꿈톡을 거의 5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왜 지금까지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 중에 꿈톡 만큼 재미있었던 게 없었어요. 그래서 계속 하고 있는 거 같아요.

Q, 꿈톡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자신을 성장시켰다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A. 꿈톡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저를 성장시키고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준 거 같아요. 꿈톡에서 강연을 했던 연사들만 해도 50명은 훨씬 넘는데 저희는 강연기획사가 아니라서 연사들이 돈 한푼도 안 받고 무료로 강연을 해주거든요.

그래서 연사와 기획자의 입장이 아니라 그냥 형 동생 친구 이런 관계로 남아 있고 지금도 다들 연락하고 고민 있을 때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마시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제 주변에 제일 많이 남은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저를 성장시키고 지금의 꿈톡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Q. 꿈톡에서 액션지원단 이라는 것도 진행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액션지원단은 무엇인가요?

A. 꿈톡이 토크쇼를 하면서 청년들의 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던 중에 뭔가를 도전하고 싶고 뭔가를 실행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는데 주변의 반대 때문에 용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의 액션을 도와주고 싶다” 어떻게 할까 이것저것 고민을 하다가 원래는 카페의 수익으로 지원을 하려고 했는데 카페 수익이 너무 안 나는 거예요. “나 혼자는 못 하겠다”해서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서 한 명당 월 5천원씩 모으기 시작한 거예요.

사실 한 달에 오천원은 크지 않은 돈인데 모이니까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두 달동안 모인 40만원을 한명의 지원자한테 전액을 다 지원을 해주는 건데 지금까지 액션지원단을 통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원금을 받았어요.

이걸 통해 격투기 대회에 나간 친구도 있고 무대를 만들어서 1인극을 만든 친구도 있고 청소년들의 공연을 대신 만들어준 친구도 있고 이외에도 다양한 친구들이 있어요. 그들의 액션을 우리가 아무 대가 없이 조건 없이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액션지원단을 만들었어요.

Q. 그렇다면 액션지원단 내에서도 “지원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을 한 경우가 있나요?
A. 한번 그런 적이 있어요. 저희가 막 시작했을 때 이 지원금을 어떻게 쓸까 하다가 지원단 내에서 “무언가를 액션하거나 실행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지원해도 굉장히 의미가 있겠다“ 해서 총 3명한테 지원을 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


Q. 책 하나로 시작한 물물교환이 청년들의 고민과 희망을 나누는 카페로까지 연결된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떠한 얘기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예전에 캐나다에서 똑같은 사례가 있었는데 빨간 클립 하나로 물물교환을 시작해서 1년 반 만에 2층집으로 교환이 된 거예요. 정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었고 이걸 따라한 사람들도 많았어요.

근데 저희 꿈톡에서도 항상 우리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었는데 당시에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문뜩 캐나다의 물물교환 프로젝트가 떠오른 거예요.

그래서 저희도 책 한권으로 물물교환을 시작했어요. 책 한권으로 물물교환을 시작해서 책이 엽서로 바뀌고 엽서가 찻잔으로 바뀌고 찻잔이 디퓨저 세트로 바뀌고 디퓨저가 그림으로 바뀌고 그림이 소파, 소파가 첼로, 첼로가 고프로 액션캠, 액션캠이 150만원 상당의 시계로 바뀌었어요. 순서만 이야기하면 굉장히 쉽게 흘러간 거 같은데 그 안에 진짜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시계가 바뀌고 나서 한 6개월 동안 정체기였어요.

그 과정에서 가수 션도 찾아가서 션한테 물물교환 이야기도 해보고 광화문에서 전단지도 뿌리고 했는데 안 되는 거예요.

근데 저희가 레이지앤트 라는 공간을 물물교환을 하기 전부터 한 달에 한번씩 여기서 토크쇼를 했었는데 그때 사장님하고 안면을 텄는데 사장님도 계속 저희의 물물교환라든지 저희가 토크쇼를 하고 행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 이 친구들이면 믿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시다가 이 레이지앤트라는 공간의 운영권을 저희한테 넘겨줬어요.

Q. 오래전 강주원 수장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A. 엄청 어렸을 때는 축구선수 등 별의별 꿈들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는 꿈이 없었고 저는 광주 출신인데 “서울에 갔으면 좋겠다”하는 정도였어요.

그리고 대학교에 와서 방황을 되게 많이 했고 20살 때는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까 “영화를 좋아하면 뭘 해야 되지”하다가 “영화감독을 해볼까”와 같은 두리뭉실한 생각들도 했었던 거 같아요.

근데 꿈이라고 말할 수 없이 많이 바뀌었어요. 경영학과 출신이니까 “우리나라 기업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마케터가 되볼까”했는데 진짜 원하는 꿈이 아니라서 얼마 못가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 꿈톡을 하기 전까지 거의 꿈이 없이 살았어요.

Q. 앞으로 강주원 수장 그리고 꿈톡이 어떠한 사람 그리고 어떠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나요?

A. 일단 꿈톡은 지금 이대로 유지 됐으면 좋겠어요. 꿈톡을 통해서 저희 멤버들이 수익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 대가 없이 하다 보니까 오히려 다른 단체들에 비해서 굉장히 오래 살아남고 있거든요.

멤버들도 각자 직업이 있어서 돈 버는 곳이 따로 있고 저도 그렇고요. 그래서 꿈톡은 만약에 저희가 40대, 50대가 되면 그 세대를 위한 꿈톡을 만들 거예요.

제가 만약에 나이가 50이 되면 사실 스무살 친구들에게 공감하기 힘들 수 있잖아요. 그때는 그 나이 대에 또 다른 수장을 만들어야죠.

그래서 20대를 위한 토크쇼는 그 친구들이 하고 저희는 또 저희 세대를 위한 토크쇼를 만들 생각이고 앞으로도 꿈톡은 그냥 지금처럼 청년들이 계속 소통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A. 자기가 진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되게 따가운 시선들을 많이 받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따가운 시선에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기사 같은 게 나면 악플이 엄청 달려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산다고 그냥 욕을 먹는 거예요.

얘기 하나 드리자면 예전에 물물 교환을 처음 시작했을 때 “뭐햐냐” “너 이거 왜하냐”라는 시선이었는데 나중에 이게 성공하고 나서는 “너 이거 어떻게 했어?”로 바뀌더라고요.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판단하기를 되게 좋아하는데 저는 사실 물물교환이 실패했다고 해도 너무 좋았을 거 같아요. 그 과정이 너무 재밌었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하는 일에 있어서 남의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이걸 계속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간은 성공할 수도 있고 성공을 못하더라도 그 꾸준함에 사람들이 시선을 바꿀 거예요.

“우와 이렇게 해나가고 있구나”라는 시선을 보내줄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남들의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자기가 원하는 일이 있으면 “나 여기까지다” “여기까지면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강주원 대표와 ]


여러분 혹시 이번 꿈톡의 강주원 수장의 인터뷰 어떠셨나요?

저는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물물교환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요.

여러분도 무언가를 하면서 “나 여기까지다”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하다보면 언젠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이루지 못할 지언정 목표와 가까운 지점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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