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성 이야기] 제노(齊魯)의 나라, 중국 산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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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웅 주칭다오 총영사
입력 2018-12-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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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진웅 주칭다오 총영사]


중국 산둥성에 위치한 태산(泰山)은 진시황을 시작으로 역대 황제들이 봉선제를 지내던 곳으로, 오악 중에 으뜸(五岳之首)으로 ‘천하제일산’이라 불린다. 중국 역사학자 곽말약은 "태산은 중국문화의 축소판이자 결정판"이라고 했다. 주(周)나라부터 춘추전국시대까지 태산을 경계로 제나라, 노나라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산둥성 문화를 ‘제노(齊魯)문화’라고도 한다. 제노문화는 산둥성이 중국 도교 및 유교 양대 문화의 발생지이자 태산의 정기까지 받아서인지 최고의 성인 공자와 맹자, 재상의 표본 관중과 안영, 병법의 대가 손자, 명필 왕희지, 천하삼분지계의 지략가 제갈량을 배출하는 등 뿌리가 깊고 폭이 넓다.

칭다오 류팅공항을 나서면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큰 산이 노산(嶗山)이다. 노산을 뒤로하고 연의 도시 웨이팡(濰坊)시를 지나면 옛 제나라의 수도 린쯔(臨淄)가 있다. 오늘날에는 쯔보(淄博)시 산하 현급 시다. 제나라는 주나라 건국 일등공신 강태공(姜太公)이 세운 제후국으로 825년 동안 번영을 누렸던 춘추전국시대 강자다. ‘서쪽에 장안이 있다면, 동쪽엔 린쯔가 있다(西有長安, 東有臨淄)’고 할 정도로 린쯔는 전국시대에 이미 규모가 7만 가구에 달했을 정도로 번성했다 한다. 산둥성 쯔보시에 있는 ‘제나라역사박물관’ 15개 전시관에는 2500년 전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제나라 박물관 [사진=칭다오 총영사관 제공]


춘추시대 초기 주나라에 의해 봉해진 제후국은 대략 140여개다. 이들 제후국은 살아남기 위해 오늘날과 같은 외교 각축전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울퉁불퉁한 땔나무 위에 누워 잠을 자고, 쓰디쓴 곰쓸개 맛을 보며’ 패전의 굴욕을 되새기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는 춘추전국시대 치열한 생존경쟁, 약육강식의 한 단면이다. 살아남기 위해 인재가 필요했고, 그래서 중국사상의 황금시대 제자백가가 출현한다. 제나라는 제환공(濟桓公) 시절 관중이라는 명재상의 보좌 하에 ‘춘추오패’ 중 첫째 패주로 올라서며 춘추전국시대 가장 부유하고 문화가 가장 먼저 피었던 나라가 된다.

강성했던 제나라는 제환공 이후 내분이 일어나 급속도로 몰락해 패권은 이미 다른 제후국으로 넘어갔다. 제나라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외교가인 안영(晏嬰)은 이렇게 제나라의 패권이 저물었을 때 3명의 군주를 보필하며 재상을 맡아 40여년간 촌철살인의 기지와 해학, 애민사상으로 제나라를 다시 중흥시킨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만일 자신이 안영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면 그의 마부가 되어 채찍질하는 것을 자랑스레 여길 것"이라고 칭송했다. 훗날 사람들은 안영을 존경해 ‘안자(晏子)’라고 호칭하며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의 탁월한 말솜씨는 외교에서도 발휘되어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유명한 고사를 낳았다.

제나라 린쯔에서 태산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제노문화의 또 다른 한 축인 노나라 수도 취푸(曲阜)가 있다. 현재는 지닝(濟寧)시 산하 현급 시다. 노나라는 약소국이지만 중국 역사상 위대한 사상가이자 정치인이고, 교육자이자 철학자인 공자가 태어난 곳이다. 중국은 물론 한국·일본·베트남 등의 주변 나라까지 영향을 주었으며, 공자와 유학을 추앙하는 12명의 황제가 직접 제사를 지냈다 하니 그의 위대함은 세월을 뛰어넘는다. 지금도 공자의 가르침에서 삶의 가치와 기준을 삼고, 역사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교훈을 얻는다.
 

공자묘 [사진=칭다오 총영사관 제공]


취푸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공자의 사당과 기념관인 공자묘(孔廟)가 있다. 매년 제례종묘는 물론 한중유학대회, 니산세계문명포럼 등 전통문화 관련 세미나·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된다. 중국 전통문화의 메카로 유학자들의 성지순례가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관광객만 해도 하루 수천명에 이르러 공자의 유학사상이 현재도 살아 숨쉬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한때 봉건주의 잔재라며 배척당했던 유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거치면서 완전히 부활하여 이제는 중국사회를 통합하는 핵심사상이 됐다. 지금 전 세계에는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자학당’만 해도 1000개가 넘는다.

산둥성은 타이항산(太行山) 동쪽에 위치해 산동이라 불렸다. 중국 동부에 있는 해안지역과 황하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전략적인 지역이다. 하나의 강(黃河), 하나의 산(泰山), 한명의 현자(孔子)로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긴 산둥성은 예로부터 인재를 중시했다. 제나라는 수도 린쯔 남문인 직문 아래에 최초의 왕립 아카데미인 직하학궁(稷下學宮)을 지어 맹자, 순자, 한비자 등 당대의 석학들이 모여 백가쟁명을 이끌었다. 오늘날에도 산둥성정부는 인재를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여기고 ‘중국 산둥 국내외 고급인재 혁신창업성과 박람회’를 올해로 10회 연속 개최했다. 해외에서 공부한 중국유학생 인재 등 해외 인재의 산둥성 창업을 환영하고 있다.
 

산둥-한국의 거리 [사진=칭다오 총영사관 제공]


중국 속담에 ‘산둥성에서 새벽에 닭이 울면 인천에서 들린다(鷄犬相聞)’는 말이 있다. 인천과 웨이하이(威海)까지의 거리는 340㎞로 서울~부산보다 가깝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이웃(隔海相望)’인 산둥성은 한·중수교 이후 우리 중소기업들의 해외투자 1순위 지역으로 부상했다. 2006년에는 한국기업 1만여개가 진출하고, 재외국민이 10만여명까지 늘어나면서 한·중 경제교류의 전성기를 이뤘다. 오늘날 산둥성 경제발전에 한국기업의 투자가 크게 기여했다는 의미다. 또한, 한·중수교 이래 한국과 산둥성은 상호협력과 교류를 통해 발전하면서 한·중관계를 견인해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해는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선포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중국은 그동안 경제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각종 경제지표가 말해주듯이 G2국가가 됐다. 세계 명품시장 소비를 30% 이상 점유하는 등 14억 인구로 세계의 주요 소비시장으로 변모하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 보면 매력적인 시장이다. 중국의 31개 성시구(省市區) 중 하나인 산둥성은 한국 면적의 1.5배, 인구수 1억여명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를 넘은 지 오래다. 또한 지리적으로도 우리와 가까워 앞으로 경제분야 교류협력이 더욱 기대되는 지역이다. 산둥성도 우리의 혁신적인 기업과 젊은 인재들이 많이 진출해 주기를 바라고 있어, 미래 한·중관계를 이끌 새로운 협력 패러다임을 인의와 인재를 중시하는 산둥성과의 관계에서 우선적으로 모색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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