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하늘나라로 간 뽀롱이(퓨마)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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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승일 기자
입력 2018-09-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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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원승일 기자


뽀롱아,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할게. 인간을 위해 갇혀 살다 인간에 의해 죽음을 당했으니 같은 종족으로서 얼굴을 들 수가 없구나. 어쩌다가 탈출했을까 묻다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답했다.

사육사의 관리 소홀, 동물원 관리 주체인 대전도시공사의 안이한 대응, 너를 대전으로 데려온 지방자치단체(대전시)에 원인을 묻다, 다다른 곳이 인간이더라.

인간은 동물원을 만들어 동물을 전시하기 시작했어. 돈을 벌기 위해서였지. 너희들이 먹이를 받아먹고, 울부짖을수록 인간의 환호성은 더 커졌지.

같은 동물이면서 유전적 우등 개체라는 지위를 악용해 너희를 강제로 우리 안에 가둬 놓기 시작한 게 한 세기가 훌쩍 지나버렸다.

한때는 우리 조선인들도 너처럼 우리 안에 갇혀 살았던 적이 있었단다.

일제 식민지 때 일본인은 우리를 열등한 종족이라며 전시를 했어. 조선 땅에 온 일본인은 울타리 너머에 있는 조선인의 옷차림, 먹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지. 마치 지금의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너를 보듯이.

너를 꼭 죽였어야만 했을까. 신기하게 쳐다볼 때는 언제고 너한테 해를 입을까 두려워 총을 쐈다고 하는데, 더 강한 마취제를 쏘거나 그물을 쳐 포획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포획 작전을 지휘했다더라. 전쟁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동되는 조직이, 과잉 대응이란 말밖에는. 

대전도시공사는 해가 저물어(일몰) 매뉴얼대로 사살했다고 해명하더라. 네가 도망 간 뒷산(보문산)이 등산객들이 많고, 주택가와 인접해 있어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인간이 살기 위해 너를 죽였다. 미안하다.

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이 대전 동물원(오월드) 내 퓨마 사육장 1개월 폐쇄 조치라는 행정 처분을 검토 중이라더라.

그런들 무엇이 달라질까. 너는 없고 너와 같은 동물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데. 너처럼 자유를 좇아 우리 밖을 나갔다 주검이 돼 돌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잖니.

뽀롱아, 새끼가 있다고 들었어. 자식을 두고 눈 감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슴이 메어 온다.

그 애는 너처럼 살다 가면 안 되는데. 자식만큼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금강청이 너를 위해 조그만 추모탑을 짓는 것을 대전시와 협의할 예정이래. 너를 박제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지만, 사살된 동물은 사체를 소각해 버린다고 하더라. 못할 짓이다.

우리 안에 가둬놨던 너를 죽어서도 가둬놓는 셈인데, 그래도 우리 인간들이 미안해서 너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너가 죽어서도 갇혀 주라.

너가 죽음으로써 인간은 동물과 공존하는 진정한 생태 환경이 무엇인지, 동물원이 꼭 필요한 것인지, 동물들의 살아갈 권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너의 죽음이 결코 헛된 게 아니다.

훗날 새끼가 커서 너가 잠든 탑에 와서 말할 거야. 엄마, 자유로운 세상에 살게 해 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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