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 칼럼] 북한의 경제발전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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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입력 2018-08-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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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北 개혁·개방 사례로 '대만' 제시했을 가능성, 유사점 상당

  • 남북경협 즉흥적 산물되면 안된다...막강한 중국 '잊지 말자'

[주재우 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최근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하면서 북한 개혁·개방에 적합한 모델은 무엇인가와 관련해 심심찮게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모델’, ‘베트남 모델’, ‘싱가포르 모델’, 심지어 ‘라오스 모델’까지 등장했다.

이들 모델이 적합하다는 주장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개혁·개방으로 북한의 정권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외부세계의 추정과 관련한 북한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실증적 사례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 모델이 북한에 개혁·개방을 설득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모두 무시했다는 점이다. 개혁·개방을 하나의 국가발전전략으로 세우는 데 있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국가의 상황, 즉 ‘국정(國情)’을 완전히 무시했다.

국가발전전략의 출발점은 그 나라의 지리적 상황이다. 가용할 수 있는 자원 보유량과 실제 지리적 위치, 노동력을 포함한 인구까지를 모두 포괄한다.

그럼 북한은 어떠한 상황인가. 북한은 자원이 풍부하다. 인구는 약 2500만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중 노동 인구가 약 1500만명으로 추정된다. 지리적으로는 중국과 셋째로 긴 국경을 공유한다. 압록강과 두만강만 넘으면 육로로 중국에 진출할 수 있다. 해상으로도 중국은 물론이고 서구 시장으로 진출이 용이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지리적 상황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북한과 관련해 제시된 경제발전 모델은 모두 적합하지 않다. 상기한 모델들의 논리는 북한이 개방해도 정권 유지가 가능하다는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다. 개혁·개방의 정치·사회적, 경제·사회적 반대급부를 과도하게 우려한 나머지 이를 무마하는 데 급급한 결과다. 

북한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중국은 지금까지 북한을 어떻게 설득하려 했을까. 어떤 사례를 예로 들었을까.

중국이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노력은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북·중 양국의 협의 내용과 관련해 공개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는 북·중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경제적 행보에서 답을 유추할 수밖에 없다.

역발상도 필요하다.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인구 2500만명 경제 규모에 오로지 정권 유지에 모든 생존전략이 집중된 이웃국가를 중국은 어떤 논리로 어떻게 개혁·개방의 길로 유인하려 했을까.

우선 공개된 자료에서는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단 한번도 대외개방을 언급한 적이 없다. 또, 중국의 개혁·개방에서 '개방'에는 목적어가 없다. 하지만 양국 사이에서 통용되는 '개방'은 세계에 대한 개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중국에 더 크게 개방하라는 것이다.

최근 두 가지 사례에서 이의 정황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중국의 30여년간의 설득 끝에 2010년 8월 김정일이 후진타오(胡錦濤)에게 개혁·개방 권고를 ‘적극 연구’하겠다며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의 후속조치로 북한이 황금평·위화도를 중국과의 경협특구로 지정했다는 사실이다. 증거를 더 언급하자면, 북한이 21세기 이후 지정한 경제특구 13개 중 8개 이상이 평양과 원산 이북지역(신의주·양강도·자강도·함경북도·평안북도 등)에 위치한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북방지역을 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이 중국을 향한 개방 확대를 북한에 자신있게 요구하려면 설득력 있는 실증적 경험과 사례가 수반되어야 한다.

중국은 아마도 이를 대만에서 찾았을 것이다. 지리적 환경, 근접성, 인구 구조,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 및 교역 구조 등에서 북한과 대만은 유사한 점이 많다. 중국이 북한과 유사한 규모의 대만이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왔던 능력과 경험으로 북한을 설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힘들다.

그 근거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했을 수 있다.

첫째, 대만의 인구 규모(2300만명)가 북한과 유사하다. 둘째, 대만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북한만큼 높지 않지만 상당히 높다.

대만의 최대 수출시장은 홍콩을 포함한 중국(41%)이다. 기타 시장의 비중은 모두 8% 이하 수준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수출입의 90%와 80% 이상을 각각 중국에 의존한다. 셋째, 대만 국내총생산량(GDP)의 중국 의존도는 16%로 세계 2위다. 중국이 대만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한때 80% 이상, 최근에는 50% 안팎이다. 

물론 북한의 대중국 경제 의존 구조와 대만의 그것에도 다른 점이 있다. 일례로, 북한은 대만과 같이 중국의 최대 투자국이 아닌 중국 투자의 최대 수혜국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중국이 북한의 개방을 경제·정치적으로 수용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실제로 북방만을 향한 것이라면 우리는 동북아의 전략 구조에서 자칫 섬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가 우리가 아닌 북한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의 지경학적 고립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의 북으로 향하는 경제 전략 구상이 분위기에 휩쓸린 즉흥적인 산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경협 배후에 중국이 있음을 절대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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