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 칼럼] 북한 ‘새 시장’의 문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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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입력 2018-06-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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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개혁·개방 당시와 흡사? 북한의 의지가 '관건'

[주재우 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올해 3월 6일 남북정상회담 확정 이후 북한의 외교 행보는 바쁘게 돌아갔다. 준비 과정에서 북한은 7일 북·미 정상회담 수용 의사를 밝혔고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그리고 5월 7일 김정은은 중국 다롄(大連)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다시 만났다. 22일 한·미 정상회담 후 26일 2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12일 열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되면서 대북 제재 국면이 해제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졌다. 이에 따라 남북경협 전망도 밝아져 국내 분위기는 한층 고무된 상태다.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 이후 중국을 다녀온 전문가들이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했다. 이들은 1978년 개혁·개방을 채택했던 당시 중국이 오늘날 북한의 상황과 매우 흡사한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중국이 당시 '개혁·개방'이라는 단어의 사전 언급 없이 시종일관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강조하다가 돌연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했다는 논리다. 북한도 지난해와 올해 신년사에서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같이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어 중국이 개혁·개방을 결정했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분석이 북·중 양국 간에 존재하는 현저한 차이점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차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에는 덩샤오핑(鄧小平)이라는 지도자가 있었다는 사실이고 나머지 하나는 개방의지다. 북한의 개방의지는 비핵화와 비례할 것인데 비핵화는 북한 전역에 대한 사찰을 수용한다는 의미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리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대한 의지는 일찍부터 확고했다. 그의 의지는 1958년 대약진 운동의 실패 이후 이미 시사된 바 있었다. 그는 그 때부터 ‘시장 요소’를 계획경제에 가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가 3번이나 숙청을 당했다.

덩은 1975년 복권 이후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다시 한 번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뜻은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 1976년 이후에나 이뤄졌다. 마오 사망 이후 그가 중국 경제 재건 관련 연설에서 개혁·개방이라는 네 글자를 직접 사용한 적은 없다. 개혁·개방이라는 말은 1980년대에 신조어로 등장했다.

덩은 대신 ‘대내적 개혁’과 ‘대외적 개방’이라는 표현을 1975년부터 사용했다. 개혁의 의미는 ‘정돈’, ‘개조’와 ‘(새로운 체제·제도) 구축이 필요한(建立必要)’ 등으로 포장했다. 개혁은 1980년 8월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소개하는 문건에서 처음으로 공식 언급됐다.

개방은 ‘유입·유치(引進)’와 ‘수출입 확대’ 등으로 설명됐다. ‘개방정책’ 단어는 개혁·개방이 정식 채택된 1978년 12월 중국 공산당 11차 3중전회보다 이른 1978년 10월에 공식적으로 사용됐다. 그래서 3중전회는 중국의 대외개방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개방 의사가 없다는 사실은 지난 달 풍계리 핵시설 폐기 장면에서 다시 입증됐다. 이번 행사에 외신기자들이 참석했지만 국제사찰단은 초대받지 못했다. 북한이 개혁·개방의 의지가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핵위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진작에 핵시설에 대한 사찰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북한은 1990년대 핵사찰을 거부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고 싶었다면 김정일 시대에도 가능했다. 김정일은 1984년에 반포한 북한의 개혁·개방법을 수립한 장본인이다. 집권 이후 김정일만큼 시장 요소를 감안한 새로운 경제개혁 조치를 취한 지도자도 없었다. 그는 2010년부터 2011년 사망 직전까지 중국과 황금평·위화도 개방사업에 매진했었다.

김정은은 이 사업을 승계했으나 2013년에 성과 없이 북한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종결됐다. 이를 통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김정은 정권이 중국에게조차도 개방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 뿐이다.

북한의 개혁·개방 문제를 제재의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결국 북한의 의지가 관건이다. 핵사찰을 비롯해 경협은 북한의 국토를 대외적으로 전면 개방하는 것일 뿐 아니라 투명성과 자유의 보장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새 시장’을 향한 무작위 공세는 금물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의 긍정적 후과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개혁·개방이 주체사상에 위배되기 때문도 아니다.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 부족도 아니다. 물론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대외적 환경이 이를 뒷받침해주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결국 문제의 실마리는 김정은의 의지에 있다. 특히 권력투쟁을 감행할 의지가 있느냐가 핵심이다.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의 모든 모델에는 권력투쟁이 뒤따랐다. 덩도 마오의 후계자 화궈펑(華國鋒)부터 자신이 지명한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까지 모두 숙청해야만 했다. 이를 김정은이 감당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일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새 시장을 열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만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일방적으로 믿어달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북한이 개혁·개방의 긍정적 효과를 모를 것이라고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봇물은 작은 구멍 때문에 터진다. 아주 작은 일에서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야만 한다. 그래서 중국이 황금평·위화도라는 외딴 섬을 개발하는 전략을 선택했던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연유를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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