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 ‘일본 패싱’ 좋은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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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편집국장
입력 2018-06-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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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아주경제 대표 겸 총괄편집국장 ]

 1941년 12월 7일 오전 6시. 수평폭격대 50대, 뇌격대 40대, 강하폭격대 51대, 제로센 43대 등 총 184대의 일본군 폭격 및 전투기가 평화로운 진주만의 미군 전함을 향해 급강하했다.
수백만명의 인명피해를 낳은 태평양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렇게 엄청난 수효의 폭격기 등을 진주만 코앞까지 실어 나른 일본 항공모함은 아카키, 카가, 히류, 소류, 쇼카쿠, 즈이카쿠 등 무려 6척이었다. 진주만 습격을 총지휘한 일본군 사령관 나구모 함대의 구성은 이밖에 전함 2척, 중순양함 2척, 구축함 11척, 유조선 8척 및 잠수함 3척으로 구성됐다. 항공기는 전투기, 수평폭격기, 급강하 폭격기, 뇌격기 등 432대였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80년 전 이야기다. 

 중국이 구 소련의 항모 바랴크를 개조해 만든 랴오닝호와 함께 자체 기술로 건조했다는 산둥호 등 2척만 들고 나와 미국과 대양에서 대결하겠다고 해서 뉴스를 도배하고 있지만 80년 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해군력을 생각해보면 코웃음이 나올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파키스탄을 잇는 ‘진주목걸이’ 전략을 추구하는 중국에 맞서 일본은 하와이와 호주 인도 등을 엮어내는 ’다이아몬드‘ 전략을 밀어붙여 스리랑카 등에서 중·일 외교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 빚어진 지도 오래됐다.

 일본 해상자위대 P3C 초계기가 어두컴컴한 망망대해에서 북한이 외국 선박을 통해 석유를 밀수하고 있는 현장을 포착할 정도로 일본 해군력은 아직도 막강 잠재력을 과시하고 있다.

 서론이 이처럼 장황해진 것은 요즘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서 ‘일본패싱’이 유행처럼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을 재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발 현장에도 6자 회담 당사국 중 일본은 빠지고 영국이 들어갔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 안에서도 고소하다면서 일본패싱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사건건 남·북·미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딴지를 거는 일본의 행태를 두둔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하지만 외교는 감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모든 일이 잘 풀렸을 때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 미국 돈이 들어갈 이유는 없다면서 한국과 중국, 일본 자본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재건에 어느 만큼의 돈이 필요할지는 계산해보는 것이 오히려 귀찮아질 정도로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은 불문가지이다.

 일각에서는 북한과 일본의 전후 배상금 규모가 수백조원에 달할 것이니 일본의 배상금만 잘 챙겨도 북한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먼저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은 자신들이 36년간에 걸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보다는 17명(일본측 주장)에 달하는 일본인 납북사건에 대해 더욱 집념을 보이고 있다.
 
 2002년 평양에서 열린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김정일 간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해 북·일공동성명을 무산시킨 사람이 바로 아베 신조 총리(당시 관방장관)였다.

 이런 배경을 고려해보면 남·북·미 관계가 정상화되고 북한 재건에 일본의 자본력이 필요할 때 일본이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는 뻔하다.

 지금 돌아가는 형세를 보았을 때 남·북·미 관계에서 6월 12일 싱가포르 회담을 계기로 모든 실타래가 한꺼번에 풀리는 큰 타협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다. 미국과 북한 양측 모두에서 ‘단계적’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반도에서 경제적 번영이라는 수사가 실재화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훨씬 정교한 프로세스가 필요할 것이다.
 
 때마침 북·미 정상회담 사흘 전 중국 칭다오에서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가 열리는데 이 자리에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3국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3국 정상회담이 이뤄지든 말든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북·중·러와 한·미·일의 대결구도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어느 경우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함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일본은 여전히 강대국이다. 경제력은 물론이고 군사력으로도 언제든지 대국화가 가능하다. 한반도 평화 정착과 북한의 경제적 재건을 위해서도 일본 자본의 역할은 아주 절실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북 회담이 성공한다고 해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당장 북한에 달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사드 문제로 중국에서도 당한 경험이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자산이 묶인 개성공단의 사례도 있지 않으냐”고 밝힌 뒤 “평양에 수십층짜리 신축건물이 들어서고 수백명의 월가 백인들이 근무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한 기업인들이 쉽게 대북 투자를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발언은 조금은 희화화된 표현이기는 하다.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베리아 가스를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실어나르는 파이프라인 건설이 절실할 정도로 일본은 어떤 식으로든 북한 재건에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한은 이 같은 건설사업에서 낙수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 외교가 북한을 달래고 미국을 달래고 중국을 달래면서 ‘운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이왕이면 일본도 달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조금도 오차가 있으면 안 되겠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매사 ‘불여튼튼’ 아니겠는가. 

 최근에는 특히 중국마저 '중국패싱'에 강력 저항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일본은 물론 6자 회담 당사국인 러시아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미 관계가 정상화된다면 그 다음은 당연히 북·일관계의 정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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