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답도 우군도 현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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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입력 2018-07-0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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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사진=아주경제 DB]

2011년 고속터미널역 환승구간 휠체어리프트에서 한 장의 안내문을 발견했다. “리프트가 고장입니다. 안내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7호선으로 환승하시려면 9호선을 이용해 동작역에서 내려서 4호선으로 환승한 후 이수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시기 바랍니다.”

안내문에는 문의 전화번호도 없었고 언제 리프트가 수리되는지도 나와 있지 않았다. 20~30개의 계단만 내려가면 되는 터라 역무실에 전화했다.

휠체어를 탄 아이와 함께 왔으니 아이를 안아서 계단을 내려가고 싶은 마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역무원은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가요?” “왜 물으시나요?” “계단 위쪽에 계시면 3호선이나 9호선에 문의하시고, 아래쪽에 계시면 7호선에 문의하세요.”

알고 보니 당시엔 3호선, 7호선, 9호선 운영사업자가 각각 달랐다. 이후 3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7호선 운영사인 도시철도공사는 통합됐다.

이때의 경험은 협동조합 ‘무의’를 통해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됐다. 유모차나 휠체어로 지하철 환승을 할 때 현장에서 제대로 안내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역들이 꽤 있겠구나 하는 판단에서였다. 차라리 현장에서 시민들이 직접 확인한 우회 경로를 공유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은 기업 경영에서도 자주 회자된다. 주로 생산직 현장의 고충을 사무직 임원들이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는 비단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재직 중인 이베이코리아에서는 ‘회원참여형 기금’으로 소방관 지원 사업을 하는데, 소방관 대기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꼭 필요한 것을 지원한다.

지방재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소방서 현실에서 지역별로 필요한 제품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직접 소방서를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한다. 눈이 많은 강원지역에서는 출동 시간을 줄이는 ‘간이제설기’를, 산세가 험한 경남지역에는 조난자를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열화상 드론’을 지원하는 식이다.

현장을 돌며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소방관들에게 소방용품 개발 아이디어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에 이베이코리아는 최근 ‘소방관 소방용품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고 대국민 투표를 진행 중이다. 소방관 당사자들이 연필로 그린 서툰 스케치와 그림판 프로그램에 사진을 붙여 만든 그림파일 형태로 170여개나 접수됐다.

현재까지 33개역 58개 구간을 만든 ‘무의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환승지도가 무의미해지는’ 교통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고장 난 리프트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는 안내가 있고, 실제로 현장에서 도움이 제공된다면 굳이 환승지도는 필요 없다. 지도를 만들 때 비장애인 봉사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직접 현장에 나가 리서치를 하고 휠체어 눈높이에 맞게 안내가 안 된 곳을 발견해 지하철 사업자에게 전달하고 변화를 촉구한다. 이 과정에서 비장애인들을 교통약자 우군으로 확보하는 것도 한 목적이다.

이베이코리아가 소방용품 지원을 하고 아이디어 공모를 하는 이유 또한 지원용품과 소방관 아이디어를 통해 소방현장의 어려움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국민 안전을 위해 고민하는 소방관들을 조명하고, 화재현장 순직만이 영웅적 행위가 아님을 알려 국민을 우군으로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 모두가 지하철에 휠체어를 타고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지역 소방서에 직접 나가서 소방관들의 근무환경을 보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던 귀중한 교훈이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우군을 얻는 방법도 모두 현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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