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야마 동물원' 폐원 위기에서 최고의 동물원이 된 비결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윤경진 기자
입력 2018-07-04 15:18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혁신은 목적, 수단, 행동이 연결돼야 가능

▣ 모두가 포기한 조직을 다시 살리는 일은 새로운 기업을 일으키고 성장하는 일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밖으로는 이미 실패한 조직이라는 편견과 부정적인 시각을 이겨내고 안으로는 패배주의에 빠진 구성원에게 담대하게 걸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명확한 목적을 보여줘야 한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아무도 찾지 않는 동물원을 세계 여행객이 찾게 만들었다.<편집자 주>

일본 북부의 홋카이도(北海道) 지방에 위치한 아사히카와(旭川)시는 인구 약 30만명의 작은 도시다. 이곳은 추운 기온과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하다. 겨울에는 영하 25도까지 떨어지고 여름에는 영상 30도를 웃돈다. 아사히카와시는 1967년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을 개장했다. 최북단에 위치한 동물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대도시가 없는 주변 환경과 추운 날씨로 관람객이 찾지 않았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약 4분의 3크기인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설상가상으로 1990년 중반 아사히야마 동물원 인근 도시에 테마파크가 생겼고 1996년 동물원의 연간 관람객 수는 26만명으로 개원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96곳의 시립동물관 중 운영이 가장 어려운 동물원으로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지목 당했을 정도다. 결국 시의회는 동물원 폐원까지 검토했다.

시설은 오래됐고 희귀한 동물도 없어 사람들이 더는 찾지 않았다. 조용하게 침몰하던 이 동물원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테마파크로 변신했을까? ‘제1급 보호동물’인 판다를 입양해 관람객의 발길을 잡았을까? 아니면 아무런 관심을 못 받은 채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고 그곳의 동물과 사육사는 원치 않는 이별을 했을까?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번은 꼭 가야 하는 특별한 동물원으로 재탄생했다. 각 나라의 여행객이 이곳을 관람하기 위해 홋카이도를 방문하는 일도 번번이 일어나 홋카이도와 아사히야마 동물원을 함께 관광하는 여행상품도 나왔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사진=senryuto]


업(業)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

폐원 이야기까지 나와 비관론이 팽배하던 1995년, 고스게 마사오(小菅正夫)가 동물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홋카이도대학 수의학부를 졸업하고 1973년 아사히야마 동물원에 입사한 고스게 마사오는 동물원 사육반장을 거쳐 원장이 됐다. 그렇다고 해도 원장을 포함한 사육사와 수의사의 수는 10명 남짓으로 인기 없는 동물원의 작은 조직이었다.

동물원 폐쇄는 이들의 직장이 사라지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정들었던 동물원의 야생동물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인기 없는 동물은 안락사 위기까지 처했다.(2009년 1월 1일 기준으로 아사히야마 동물원 보유 동물은 총 135종 779마리다.) 고스게 마사오와 그의 동료는 동고동락을 함께 한 동물의 운명이 안타까웠고 야생동물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못 받는다는 사실이 슬펐다. 이들은 관람객이 이곳을 찾아와 동물을 보며 즐거워하길 원했다.

동물원을 살려야 한다고 다짐한 고스게 마사오는 동물원의 폐쇄만은 막아달라고 의원들을 쫓아다니며 설득했다. 그의 노력으로 마침내 시의회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에게 기회를 주기로 하고 고스게 마사오에게 동물원장직을 맡겼다. 폐원 위기의 동물원을 살릴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다. 이제 사육사들이 자신들의 생계는 물론 물속에서 헤엄치고 생선을 먹는 북극곰과 따듯한 햇살을 맞으며 낮잠을 자는 펭귄의 운명도 책임져야 했다. 관람객 수가 적은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처음부터 정부지원금을 받을 가능성은 없었다. 설령 지원금으로 대형 놀이시설을 건설해 대도시의 동물원과 경쟁한다고 해도 자본, 위치 모두 열세로 홋카이도의 흉물로 남았을지 모른다.

그들은 시설이 아닌 자신들 먼저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물원을 관리하는 입장이 아닌 관람객의 입장과 동물의 시선에서 동물원을 관찰했다. “동물들이 움직이지 않고 자기만 해서 시시하다”라는 관람객의 말을 듣고 동물원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동물원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원점에서부터 의문을 던졌다. 생계 유지를 위한 직장이 아닌 업(業)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에는 30년간 유지한 ‘학습회’라는 이름의 자발적 모임이 있다. 직원들은 학습회에서 사육사들의 노하우와 실패담을 이야기하고 들었다. 이들은 학습회에서 ‘업’에 대한 토론을 하고 개념을 다시 세웠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변화는 고스게 마사오의 리더십만큼 수십년간 이어온 학습회의 역할도 컸다.

자발적인 토론을 하는 문화는 업에 대한 물음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확고한 목적을 만들도록 했다. 학습회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동물들의 경이로움을 모두에게 전달하고 싶다"라는 의견이 모아졌다.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는 공간'이 되기로 정한 것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북극곰이 수영하는 모습을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북극곰 전용 수족관을 만들었다.[사진=야사히야마 동물원]


생명의 경이로움을 전하고 싶다

동물원을 찾아 온 관람객이 삶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까. 그들은 고민했다. 우선 사육사들이 동물과 생활하며 느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관람객 앞에서 동물에 대해 설명하기로 했다. 동시에 다양한 동물이 일률적인 철장에 갇힌 무기력한 공간이 아닌 자유롭게 뛰어 놀며 생기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목적을 실현할 수단을 궁리했다. 동물과 인간이 교감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본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시도가 필요했다. 우리 속에 갇혀서 시간마다 나오는 음식을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동물이 본능과 습성을 무시당한 채 반복적인 일상을 강요당하는 것은 학대나 다름없었다.

본능을 잊어 무기력한 동물은 관람객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지 못한다. 관람객은 동물의 습성과 본능적 행동을 보고 싶어서 동물원에 온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동물의 본능을 존중하기로 했다.

고스게 마사오는 이렇게 말한다. "훈련으로 침팬지가 자전거를 타는 것은 곡예이지, 본능이 아닙니다. 태어나서 20년 동안 한 번도 나무에 올라보지 못한 오랑우탄이 훈련 없이도 나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본래 가지고 있던 능력, 즉 습성 때문이에요."

본능과 습성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을 관람객에게 보여주자는 결론이 나왔다. 새로운 전시방법인 ‘행동전시’가 탄생한 순간이다. 행동전시 이전의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전시법은 세 가지로 다른 동물원과 크게 다를 것 없었다.
 

바다표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마린웨이[사진=Keyaki]

첫째 동물의 분류대로 구분하는 법, 둘째 서식지 기준으로 동일 지역의 야생동물을 모으는 법, 셋째 살고 있는 서식지를 재현하는 생태적인 구분법이다. 인간이 정한 인간중심의 분류법이다.

행동전시는 이전과 다르게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고스게 마사오와 사육사는 학습회에서 나온 행동전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작업으로 스케치를 선택했다. 14장의 러프 스케치가 나왔다. 고스게 마사오는 스케치를 가지고 시장을 찾아갔다. 스케치를 펼쳐 보이며, 앞으로 만들고 싶은 새로운 전시형태의 동물원 이야기를 했고 어렵게 시설확충 예산을 얻어냈다.

펭귄을 날게 하자
 

공중에 제작한 펭귄관은 펭귄이 날아다니는 풍경을 만들었다.[사진=플리커/Sendai Blog]

1997년 첫 행동전시인 ‘어린이 목장’을 개장했다. 물론 학습회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염소와 토끼, 오리 등 온순한 동물을 관람객이 만지며 피부로 직접 느끼게 했다. 동물과 사람의 거리를 좁혀 교감을 느끼도록 한 첫 시도다. 그 이후 사육사가 직접 담당 동물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제작하고 동물과 같이 놀면서 재미있게 설명하는 ‘원 포인트 가이드’를 만들었다.

동물들이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는 '냠냠 시간'은 지금도 관람객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동물은 먹이를 먹는 시간도 평범하지 않다. 1999년 개장한 '원숭이 산'은 관람객이 원숭이를 관찰하도록 설치한 투명한 관찰용 창에 꿀을 발라두었다. 꿀을 좋아하는 원숭이는 관람객 바로 앞으로 다가와 툭 튀어나온 누런 이를 드러낸 채 벌건 혀를 날름거리면서 꿀을 핥아 먹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물의 습성에 맞춰서 공간을 다시 디자인했다. 밀림의 오랑우탄은 땅바닥이 아닌 나무를 타며 공중에서 생활한다. 반면, 동물원의 오랑우탄은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며 땅에서 생활했다. 오랑우탄의 습성과 반대되는 환경이 스트레스 원인이었다. 오랑우탄을 위해 높은 기둥과 밧줄로 구성된 공중 방사장을 만들었다. 밧줄을 타고 사람의 머리 위를 옮겨 다니는 오랑우탄은 야생의 모습과 같았다. 고개를 들어서 아슬아슬하게 나무를 타는 오랑우탄을 바라본 관람객도 동물원이 아닌 밀림에 온 착각이 들었다. 높은 바위산이나 통풍이 잘되는 곳을 좋아하는 표범을 위해서는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가는 터널형 우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터널을 지나가며 머리 위에서 낮잠을 자는 표범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야행성으로 낮에는 잠만 자는 표범을 새롭게 관찰할 수 있는 행동전시다. 바다표범 관의 가운데 공간에 대형 아크릴 원통 기둥을 설치하고 ‘마린웨이’라고 불렀다. 바다표범이 기분 좋을 때는 마린웨이 속을 헤엄 쳤다. 관람객은 이 광경을 360도 각도로 생생하게 바라봤다.

땅 위에서 뒤뚱거리며 천천히 걷는 펭귄은 물속에서 날아다니는 듯 헤엄을 친다. 이런 모습은 펭귄과 같이 생활하는 사육사만 볼 수 있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사육사들은 펭귄이 물속에서 제트기처럼 폼 나게 비행하는 모습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들의 소망은 14장의 스케치에 담겨있었다. 펭귄관도 그중 하나다. 

공중에 투명한 아크릴 터널을 제작하고 물을 채워 펭귄을 그곳에서 놀도록 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펭귄이 수영을 했다. 관람객이 하늘을 쳐다보면 빛나는 태양 밑에서 펭귄이 날아다니는 진풍경이 보였다. 펭귄관의 인기는 대단했다. 2009년에는 동물원의 변화를 담은 이야기가 츠가와 마사히코 감독의 ‘펭귄을 날게 하라’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눈으로 유명한 홋카이도는 동절기인 11월 이후에는 추위와 폭설로 사람의 발길이 끊긴다. 동물원도 휴원했다. 추운 지방에서 사는 펭귄은 홋카이도의 겨울을 좋아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지 못했다.

동물원은 겨울에 펭귄산책로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동절기에도 개관했다. 눈을 보기 위해 홋카이도를 방문한 여행객들은 펭귄이 줄 지어 걸어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동물원도 방문했다.

변화를 주도한 고스게 마사오는 “동물원은 동물들이 마음 놓고 있는 자연스런 모습을 보는 곳입니다. 즐겁지 않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찾아오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발상의 전환이 불러온 큰 변화

1995년도만 해도 28만명이던 아사히야마 동물원 관람객은 2006년에 304만명으로 증가했다. 폐원 위기의 동물원이 갑자기 이런 인기가 생긴 이유는 뭘까?

고스게 마사오는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행동에 나섰다. 결과와 상관없이  좌절하지도 않았다. 관람객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그렇다고 고스게 마사오의 리더십만으로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재창조가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다. "사육사들이 20~30년간 애정을 갖고 동물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가 이런 창조적 아이디어를 빚어냈다"는 고스게 마사오의 말처럼, 아사히야마 동물원 변화의 아이디어는 리더십과 팀워크의 조화에서 시작했다.

실천적 삼단논법은 목적이라는 대전제와 수단이라는 소전제, 마지막으로 행동이라는 결론이 유기적으로 연결 됐을 때 성과가 이뤄진다. 즉 목적, 수단, 행동 이 세 가지가 선순환하듯 연결돼야 한다. 아사히야마 동물원 혁신의 바탕에는 삼단논법이 깔려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겨울에 활동량이 많은 펭귄을 위해 펭귄 산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사진=Keyaki]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고스게 마사오를 주축으로 구성원과 명확한 목적을 정하고 학습회에서 공유하고 공감했다. 토론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단으로 원포인트 가이드와 동물의 특성과 본능을 살린 행동전시를 선택해 하나씩 변화했다. 동물과 관람객 모두가 원하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변화를 거듭할수록 관람객을 관찰하고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길렀다. 섬세하게 관찰하고 입장을 바꿔 다시 한번 생각하는 일은 비용이 들지 않지만, 혁신적인 힘을 가진다. 이러한 사실을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증명했다. "꼭 돈을 들이지 않아도 작은 발상의 전환이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혁신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는 고스게 마사오의 답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성공은 다른 조직에도 변화의 불씨를 옮겼다. 도쿄의 우에노(上野) 동물원을 비롯한 일본 각 지역의 동물원이 아사히야마의 행동전시와 비슷한 시설을 만들었다. 특히 아이치현(愛知縣)의 주부(中部)국제공항은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행동전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공항을 대대적으로 손봤다. 평소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활주로와 물류 견인 트랙터 등을 개방해 비행기의 이착륙을 가까이서 보도록 했다. 사람들은 단지 공항의 숨겨진 모습을 보기위해 먼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이치현까지 날아왔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구성원들이 혁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구성원은 일본의 웹 매거진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리들은 여러분들이 야생동물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 동물원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야생동물을 가까이 느끼고 동물의 경이로움과 생명의 존엄함을 느끼셔서, 각자 살고 있는 지역의 환경, 나아가서는 지구환경보호에 관심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늘어나면 지구와 야생동물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저희들의 존재의의가 있는 것이지요.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진정한 성공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1개의 댓글
0 / 300
  • 덕분에 아사히야마 동물원에 좀 더 알아볼수있었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려요!

    공감/비공감
    공감:0
    비공감: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