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보팅 사라지는 주총] 대란 못 막으면 상장사ㆍ투자자 모두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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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형·이승재 기자 기자
입력 2018-03-0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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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 의결권 위임장 판칠 우려…특정일 주총 몰려있는데 보완책 미비

  • 소액주주 비율 높은 상장사 대상 의결권 위임 대행업체도 기승 부릴 듯

  • 의사정족수 미달 땐 주총 못 열어…주요현안 처리 차질 불가피할 전망

[사진=이서우 기자]


주주총회에 더 많은 소액주주를 참여시키려고 상법을 고쳤으나 부작용을 막아줄 장치는 빠뜨렸다. '가짜 의결권 위임장'이 판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특정일에 주총이 몰리는 '슈퍼 주총 데이'가 여전하고, 이를 보완해줄 전자투표 시행률은 저조하다. 

8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주총에 전자투표로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2017년 1~11월 발행주식 수 대비 2.18%(67만6000주), 주주 수 기준으로는 0.21%(1만4421명)에 그쳤다. 올해는 예탁결제원이 전자투표를 이용하는 주주에게 2억원어치 경품을 걸었지만, 참여율을 얼마나 올릴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다.

당장 대주주 지분율이 25% 미만인 상장사(119곳)가 가장 큰 문제다. 발행주식 가운데 25%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의결정족수를 못 채우면 주총을 다시 열어야 한다. 올해도 주총일이 3월 하순에 집중돼 '슈퍼 주총 데이'를 피하지 못했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소액주주 참여율을 높이려고 전자투표제, 서면투표제를 도입했다"며 "이런 노력에도 관심을 갖는 주주가 많지 않아 효과를 못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부르는 게 값'인 주총 대행업체

정기주총 시즌이 본격적으로 막을 열면서 의결권 위임을 대행해주는 업체도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소액주주 비율이 높은 상장사가 가장 큰 표적이다. 회사만 노력해서는 단기투자 성향이 강한 소액주주를 주총장으로 불러내기 어렵다.

상장사 입장에서 주총을 못 열면 주요 현안 처리뿐 아니라 배당금 지급에도 문제가 생긴다. 기업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결국 큰돈을 들여서라도 대행업체에 일을 맡기는 이유다.

과거 증권가에서는 이런 대행업체 수를 10곳 남짓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섀도보팅(중앙예탁기구 의결권 대리행사)을 없앤 첫해인 올해부터는 대행업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요즘 대행업체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커졌다. 결국에는 투자자도 손해다. 회사에 부담을 주면 실적 악화나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가짜 위임장은 더 심각하다. 상장사 입장에서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단 몇 주가 부족해 주총을 못 여는 상황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막고 싶을 것이다.

물론 금융당국은 이를 발견하면 즉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박명광 금융감독원 지분공시팀장은 "공문서 위조죄를 비롯한 형사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국회에 무더기로 발목 잡힌 보완책

주총 대란을 막을 확실한 방법은 상법 개정이다. 하지만 30여개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묶여 있다. 먼저 의사정족수 문턱을 낮추라는 지적이 많다. 1995년 상법 개정으로 의사정족수 자체를 규정하는 조항은 사라졌다. 하지만 '4분의1 찬성' 요건이 사실상 의사정족수 역할을 하고 있다.

재계는 출석주식 과반수로 결의할 수 있게 법을 고쳐달라고 요구한다. 감사 선임에만 적용하는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애초 도입 취지처럼 중립적인 감사를 뽑기보다는 외국계 헤지펀드 같은 특정세력만 영향력을 키울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를 담은 상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를 적용하면 주당 1표가 아닌, 선출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가질 수 있다.

반대가 만만치 않다. 다중대표소송제는 회사마다 보장해야 할 독립적인 법인격을 훼손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적대적인 인수·합병(M&A)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 있어 반대한다.

주총 분산을 위한 방안도 아직 부족해 보인다. 현행 상법은 해마다 한 차례 '일정한 시기' 주총을 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즉, 결산기로부터 언제 소집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상장법인은 사업보고서를 회계연도 종료 후 90일 안에 내놓아야 한다. 자본시장법이 이렇게 규정하고 있어서다. 12월 결산인 상장사가 3월 말에 일제히 주총을 여는 이유다.

국회입법조사처 한 관계자는 "주총 분산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은 상법 개정"이라며 "법을 고치기 전이라도 전자투표 활성화를 비롯한 대안이 작동하도록 당국에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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