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칼럼] 대기업이 떠난 자리, 중소기업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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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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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IBK경제연구소장 [사진제공=IBK은행]

글로벌 경기 회복에 힘입어 수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소비 및 투자심리도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해운 중심의 대기업 구조조정 여파는 중소 협력기업과 지역 소상공인의 매출 감소, 대량 실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말 기준 선박 제조가 포함된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약 17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20만8000명) 대비 3만7000명이나 감소했다. 이 가운데 주력 소비층인 30~40대가 2만명으로 전체 감소 인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 감소와 지역경제 위축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먼저 대기업 구조조정을 극복한 해외 사례가 있다. 이탈리아 최대 민영 조선사 SEC(Societa Esercizio Cantieri)는 1980~1990년대 한국 조선업의 급성장과 유조선 공급 과잉으로 2000년 파산했다. 이에 토스카나주(州)와 비아레조시(市)는 조선의 틈새산업인 레저선박을 집중 육성키로 하고 민간 51%, 공공 49%의 자본금 비율로 요트부품업체를 위한 컨소시엄(NAVIGO)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400개 이상의 중소기업들이 회원사로 참여했고 요트 기업의 신규 진입과 기존 기업 간 협업, 그리고 선장·엔지니어·물류관리사 등 인력 양성을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토스카나주의 요트 관련 중소기업은 3년 만에 2900개(이탈리아 전체의 26%)를 넘어섰고, 요트 관련 매출액은 국가 전체의 45%를 점유하며 글로벌 요트 산업의 핵심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대기업 중심의 일반상선 제조'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레저선박 제조'로의 체질 변화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인구 21만명의 로체스터시는 1980년대 이후 고용의 40%를 책임지던 빅3(코닥, 제록스, 바슈&롬) 기업의 실적 악화로 내리막길을 겪고 있었다. 특히 코닥은 전성기에 약 6만명의 지역 인력을 고용했었지만 2012년 현지 사업을 접었다. 사람들은 포드가 떠난 후 디트로이트가 몰락한 것처럼 로체스터도 제2의 디트로이트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코닥이 사라진 후에도 로체스터는 디트로이트와 달리 성장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로체스터시는 지역 내 대학 연구소에 주목했다. 숙련된 고급 연구 인력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중소기업에 이직하거나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산학 협력을 통해 비영리기관인 GRE, HTR을 설립하여 중소기업 자금, 창업, 인력 채용 등을 지원했다. 코닥은 약 150만평에 이르는 부지와 생산시설을 개방하여 코닥의 독점 기술을 공유하면서 필름 및 카메라 제조와는 전혀 상관 없는 식품, 화학, 에너지 부문의 제조 중소기업들까지 입주토록 했다.

그 결과 로체스터는 약 9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고 중소기업 고용 비중이 57%(1980년)에서 94%(2016년)로 뛰어올랐다. 지역 내 실업률도 뉴욕주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2015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취업하기 좋은 도시 1위에 올라 도시 재건에 완전히 성공했다.

조선‧해운 협력기업 300개를 대상으로 한 IBK경제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 중소기업 지원 정책으로 지역경제 복원을 위한 재개발 사업 추진과 민·관협력을 기반으로 한 지역 내 중소기업지원센터의 설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는 앞서 사례에서 제시된 지방정부와 기업, 대학 간 유기적인 협력 체제가 곧 솔루션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정책도, 정부 지원도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때 구원이 될 것이다. 이제는 지방정부와 기업, 대학이 함께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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