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사랑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 사랑이 끝난 뒤 오는 상실의 잔인함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사진=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사랑은 언제까지가 사랑일까. 함께하는 동안에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같은 마음으로 같은 미래를 꿈꾸지 못할 때가 있다.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은 함께했던 시간마저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일까.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한때 서로의 세계였던 두 여자의 사랑과 이별을 따라가며 관계가 끝난 뒤에도 남는 감정과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는 15세 소녀 아델(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의 일상에서 출발한다. 문학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학생인 아델은 남학생과 연애를 시도하지만 좀처럼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파란 머리의 여자를 스쳐 지나간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델의 마음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남는다. 그 여자의 이름은 엠마(레아 세이두). 미술을 공부하는 엠마는 아델보다 나이가 많고, 자신의 성적 지향과 삶에 비교적 솔직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우연히 다시 만나 서로에게 이끌린다. 아델은 엠마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알아간다. 처음 경험하는 감정은 낯설고 두렵지만, 동시에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를 열어준다. 아델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주변의 시선 앞에서 주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엠마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랑은 아델에게 누군가를 향한 감정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고 함께 생활한다. 아델은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엠마는 화가로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넓혀간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강하게 끌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차이가 드러난다. 엠마는 아델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기를 바라지만, 아델은 지금의 일상에서도 충분한 행복을 느낀다. 엠마의 주변 사람들이 예술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아델은 좀처럼 어울리지 못한다. 엠마를 사랑하면서도 그가 속한 세계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같은 것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엠마에게 사랑은 서로의 성장을 이끌고 각자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지만, 아델에게는 함께 식사하고 하루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을 표현하고 관계에서 기대하는 방식은 조금씩 어긋난다.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델은 외로움을 느끼고, 엠마 역시 아델이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데서 답답함을 느낀다.
 
사진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사진=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결국 아델은 직장 동료인 남성 교사와 관계를 맺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엠마는 큰 충격을 받는다. 격렬한 다툼 끝에 두 사람은 헤어진다. 아델은 울며 용서를 구하지만 엠마는 돌아서고, 아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집마저 떠나야 한다. 두 사람이 쌓아온 일상은 무너지고, 아델에게 남은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상실감이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남는 것

몇 년 뒤 엠마는 새로운 연인과 함께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지만, 아델은 여전히 과거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델에게 엠마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엠마에게 아델은 소중했던 과거의 한 부분으로 남았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아델은 파란 원피스를 입고 엠마의 미술 전시회를 찾아간다. 그곳에는 과거 엠마가 그린 아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림은 두 사람이 한때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증명하는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아델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전시회장을 떠나고 홀로 걸어가는 아델의 뒷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에서 파란색은 엠마의 머리카락을 통해 처음 등장한다. 아델에게 파란색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계이자,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의 색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아델이 파란 옷을 입고 걸어간다. 한때 엠마를 상징했던 색이 아델의 일부가 된 것이다. 엠마와의 사랑은 끝났지만, 그를 만나면서 경험한 감정과 새롭게 알게 된 자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랑은 때로 한 사람을 내 삶의 전부로 만든다.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없게 됐을 때는 함께한 시간마저 실패였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이 그 안에서 느꼈던 기쁨과 배움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델은 엠마를 잃었지만, 엠마를 만나기 전의 자신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다. 사랑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발견했고,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것은 그 사랑이 영원히 지속됐다는 뜻이 아니다. 함께할 수 없게 된 뒤에도 그 경험이 자신의 삶을 이루는 일부로 남는다는 의미다. 한때 서로의 전부였던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아도 그 시간은 한 사람에게 인생의 큰 의미로 남는다. 이렇듯 사랑은 끝날 수 있어도, 사랑했던 시간은 이별 후 삶 속에서도 계속된다.
 
사진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사진=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