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사이트] "공장에도 사람처럼 '귀'가 필요하다"…아기 울음 듣던 AI, 산업 현장으로

이수지 디플리 대표
이수지 디플리 대표

디플리는 사람이 귀로 듣고 판단하던 제조 현장의 소리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품질과 안전을 관리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출발점은 아기 울음소리였지만, 현재는 자동차 부품을 비롯한 제조 현장의 기계음과 체결음 등을 분석하며 산업용 음향 AI 시장을 넓히고 있다.

30일 서울 마포구 디플리 사무실에서 만난 이수지 대표는 디플리를 두고 “자동화된 공장에 청각 모듈을 공급하는 회사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처럼 로봇이 변해가는 시점에 시각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청각 모듈이 달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음향 AI를 사업으로 선택한 출발점에는 ‘신호처리’가 있다. 카이스트 전자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뇌인지과학과에서 뇌파 신호처리를 전공한 그는 뇌파와 소리가 서로 다른 데이터처럼 보이지만 기술적으로는 비슷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크게 보면 소리나 뇌파나 모두 신호를 처리하는 분야”라는 것이다. 주파수로 나누거나 전처리하는 기술이 발전한 데 이어 최근 AI와 딥러닝이 결합하면서 “더 많은 신호를 높은 해상도로 분석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소리 분석 기술의 발전을 카메라에 비유했다. 과거 흐릿했던 이미지가 고해상도로 발전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게 된 것처럼, 소리 역시 AI 기술의 발전으로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디플리가 처음부터 제조 현장을 바라본 것은 아니다. 2020년에는 AI로 아기 울음소리를 분석하는 애플리케이션 ‘와(WAAH)’를 출시했다. 직접 아이를 키우면서 울음소리만 듣고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기 어렵다는 경험이 사업의 출발점이 됐다.

이 대표는 “저도 아이를 한 명 키우다 보니까 아이가 어떤 것을 표현하는지 알기가 어렵더라”며 “데이터를 많이 모아서 분석하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아기 울음소리를 많이 들어본 부모는 배고픔이나 불편함 등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지만, 처음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잘 모르니까 데이터를 활용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B2C 사업을 하면서 디플리가 쌓아온 기술을 어디에 적용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결국 기술 기반 창업팀이라는 정체성과 기존 기술 역량을 고려해 B2B로 방향을 틀었다. 이 대표는 “저희가 기술 기반 창업을 한 팀이고 지금까지 기술도 많이 쌓아왔다”며 “저도 그렇고 공동창업자도 공학 기반이다 보니까 B2B가 저희에게 좀 더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B2C와 B2B의 차이는 사업 방식에서도 뚜렷했다. 이 대표는 소비자 대상 사업에서는 편의성을 높이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사용자경험(UX)과 온라인 마케팅이 중요했다면, 제조업에서는 실제 현장에 들어가 기술을 검증하고 신뢰를 쌓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B2C와 B2B는 정말 근원부터 다른 느낌”이라며 B2C 당시에는 “소비자를 더 편하게 만드는 UI·UX 측면의 팀이 많았고 온라인 마케팅도 대규모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반면 제조 분야에서는 “박람회를 중심으로 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기사를 통해 신뢰도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사업 전환 과정에서 조직도 한 차례 크게 줄었다. 아기 울음 분석 사업을 위해 인력을 늘렸지만 사업을 접으면서 다시 인원을 줄였고, 이후 이 대표와 공동창업자, 동료 2명 등 4명이 다시 B2B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조직을 다시 키워 현재는 27명이 일하고 있다. 개발 인력이 전체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며 AI 알고리즘과 제품 개발을 각각 맡고 있다.

디플리가 제조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는 ‘사람의 귀’에 의존하던 품질 검사의 한계였다. 자동차 부품 제조 현장에서는 제품을 움직여 이음이 발생하는지 듣거나, 커넥터와 볼트가 정상적으로 체결됐는지를 소리로 확인하는 검사가 오랫동안 이뤄져 왔다.

하지만 사람이 듣는 검사는 객관적인 데이터로 남기 어렵다. 검사자의 숙련도나 컨디션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고, 불량 여부를 판단한 근거를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이 대표는 이를 두고 “기존 자동차 업계에서는 사람 귀로 체크했다”며 “그런데 이제는 사람 귀로만 해서는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증빙과 자료를 남기고 이를 데이터화해야 하는 만큼 “이런 것들을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마포구 디플리 사무실 내 마련된 쇼룸 액츄에이터 이음 진단과 커넥터 체결음 감지 등 솔루션을 볼 수 있다 사진디플리
서울시 마포구 디플리 사무실 내 마련된 쇼룸. 액츄에이터 이음 진단과 커넥터 체결음 감지 등 솔루션을 볼 수 있다. [사진=디플리]

디플리의 산업용 음향 AI 솔루션 ‘리슨 AI 인더스트리얼’은 자동차 모터·액추에이터·베어링 등의 품질 검사와 커넥터·볼트 체결음 검사 등에 활용되고 있다. 현재 시간당 1만8000개 이상의 제품을 100% 인라인으로 검사하고 있으며, 누적 음향 데이터는 52만 시간, 20TB 이상이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데이터’다. 제조라인에서 하루 수백 개에서 많게는 수만 개의 제품이 생산되고, 이때 발생하는 소리가 제품 정보와 함께 축적되기 때문이다. 그는 “양산 환경에서 어떤 라인은 하루에 몇백 개가 생산되고, 어떤 라인은 많게는 몇만 개가 생산된다”며 “그 라인에서 생산되는 소리가 전부 잘려서 녹음되고 어떤 제품인지까지 연동돼 데이터화된다”고 말했다.

단순히 소리를 많이 모으는 것과도 차이가 있다. 정상 제품인지 불량 제품인지, 어떤 제품에서 발생한 소리인지, 생산 시점과 공정 정보가 무엇인지까지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디플리의 경쟁력으로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꼽는 이유다. 그는 “그런 데이터가 계속 축적돼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음향 AI가 제조업에서 활용될 수 있는 배경에는 자동차 산업의 변화도 있다. 전기차 확산으로 차량 자체가 조용해지면서 작은 이음이나 이상음에 대한 품질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의 귀로 확인하던 미세한 차이를 데이터로 구분하고 기록해야 할 필요도 커졌다.

이 대표는 음향 AI가 비전 AI에 비해 아직 작은 시장이라는 점도 인정했다. 다만 제조 현장이 자동화될수록 시각뿐 아니라 다른 감각을 담당하는 센서가 필요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음향 AI는 비전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분야일 수 있다”면서도 “시각에 있는 두 번째 감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제조하는 업계가 계속 이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여러 센서 모달리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디플리는 국내 제조업에서의 적용 사례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도 겨냥하고 있다. 2025년에는 H그룹 계열사의 국내·멕시코 사업장에 리슨 AI 인더스트리얼을 공급했고, 2026년에는 글로벌 자동차 모터 제조기업에도 솔루션을 납품했다. 현재 전 세계 30개 산업 현장에서 솔루션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데브시스터즈벤처스, 수인베스트먼트캐피탈, 노틸러스인베스트먼트로부터 25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고, 8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 TIPS 일반트랙에 선정됐다. 

지금까지는 특정 생산라인에 맞춰 성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같은 제품을 더 많은 제조기업이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하나의 라인에 투입돼 기술 성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같은 제품을 더 많은 고객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제품력을 높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도입 시간이 짧고 설치 시간이 짧아지면 비용도 줄어들고 더 많은 고객사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조기업으로 진출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이 대표는 현재 외형이 연간 약 3배씩 성장하고 있다며, 투자 유치나 기업공개(IPO)보다 고객사의 실제 도입을 빠르게 늘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꿈꾸는 디플리의 최종 모습은 명확하다. AI가 사람의 눈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 사람이 듣던 영역까지 기계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대표는 디플리의 방향을 “산업용 로봇의 귀를 만드는 회사”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동화된 공장에 지금까지는 시각적인 모듈이 주를 이뤘다면, 사람처럼 로봇이 변해가는 시점에는 청각 모듈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그 부분에 청각 모듈을 공급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