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홍상수·나홍진이 넓힌 韓영화…영화제 넘어 북미 극장까지

왼쪽부터 이창동 감독 홍상수 감독 나홍진 감독 사진넷플릭스 영화사 전원 플러스엠
(왼쪽부터) 이창동 감독, 홍상수 감독, 나홍진 감독 [사진=넷플릭스 영화사 전원 플러스엠]
한국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다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번에는 서로 다른 색깔의 작품으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온 감독들이 그 중심에 섰다. 이창동 감독은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홍상수 감독은 '눈 둘 데가 없네'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3관왕에 올랐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세계 영화제 초청을 거쳐 북미 1560개 스크린에서 개봉하며 상업시장에서도 성과를 냈다. 작품의 규모와 장르, 해외 진출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세 감독 모두 자신만의 영화 언어로 세계 관객과 만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한 건 이창동 감독이다. '가능한 사랑'은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은사자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베니스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녀의 남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출연했다. 이 감독은 앞서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지 24년 만에 다시 베니스에서 은사자를 품었고,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까지 함께 받으며 공식 심사위원단과 평단 모두의 선택을 받았다.

이 감독은 폐막식 수상 소감에서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이었던 두기봉 감독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성숙한 영화"라며 "모든 디테일과 성찰이 마음에 들었다"고 평했다.

베니스 이후 행보도 이어졌다. '가능한 사랑'은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북미 프리미어를 열었다. 1721석 규모 상영관이 관객으로 가득 찼고, 이 감독은 한국 감독 최초로 TIFF 에버트 감독상을 받았다. 베니스에서 작품으로 평가받은 데 이어 토론토에서도 감독의 오랜 작품 세계가 다시 조명받았다. 영화는 오는 23일 국내 일부 극장에서 선개봉하며,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공개된다.

홍상수 감독도 로카르노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성과를 냈다. 35번째 장편 '눈 둘 데가 없네'는 제79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최우수연기상,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3관왕에 올랐다. 주연 김민희는 2024년 '수유천'에 이어 이 영화제에서 두 번째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72분 분량의 '눈 둘 데가 없네'는 이혼 가정의 딸 상희가 10년 전 마지막으로 만난 엄마를 찾아 제주도로 향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민희, 최명길, 권해효, 신석호, 박미소가 출연했다. 홍 감독은 이번에도 제작과 각본, 연출뿐 아니라 촬영과 녹음, 편집, 음악까지 직접 맡았다.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을 두고 "최고의 기량이 최고의 자유, 단순함과 만났을 때 탄생하는 영감을 주는 우화"라고 평했다. 버라이어티는 "홍상수 영화의 정수를 가장 친근하게 보여준다"고 썼고, 리베라시옹은 "씁쓸하고 목가적인 정서를 충실히 이어가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홍 감독이 로카르노와 맺어온 인연도 길다. '우리 선희'가 2013년 감독상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2015년 황금표범상과 최우수연기상을 받았고, '강변호텔', '수유천'을 거쳐 이번 작품으로 다섯 번째 로카르노 초청작을 냈다. '눈 둘 데가 없네'는 오는 10월21일 국내 개봉한다.

이창동과 홍상수가 국제영화제를 중심으로 성과를 쌓았다면 나홍진 감독은 장르영화로 해외 극장 시장을 들썩이게 했다. '호프'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시작으로 뉴욕아시아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됐고 오는 10월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서도 상영된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있는 호포항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마을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추격자', '황해', '곡성'을 만든 나 감독의 신작으로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이 출연했다.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시작으로 제25회 뉴욕 아시아 영화제, 51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74회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았던 '호프'는 해외 개봉 이후로도 좋은 성과들을 내고 있다. 지난 9일 북미 전역 1560개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했다. 이는 한국영화 가운데 '기생충'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북미 개봉으로, 개봉 첫 주 492만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상위 10위권에 들었다. 황정민·조인성·정호연은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북미 주요 도시를 돌며 오프라인 프로모션 투어에도 나섰다.

더 데일리 비스트는 "압도적인 상상력과 멈출 줄 모르는 질주"라고 평했고, 뉴욕타임스는 나 감독의 액션 연출을 "우아한 발레"에 비유했다. 나 감독은 북미 현지 관객과 만난 자리에서 "극장에서 제가 보고 싶어서 만든 영화"라며 기존의 예상을 벗어나는 장르와 편집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세 감독이 성과를 낸 경로는 저마다 다르다. 이창동 감독은 오랜 공백 뒤 내놓은 신작으로 베니스와 토론토에서 작품성과 연출 세계 전체를 인정받았고, 홍상수 감독은 꾸준한 창작으로 로카르노에서 다섯 번째 초청이라는 기록을 쌓았다. 나홍진 감독은 장르영화의 스케일과 대중성을 앞세워 영화제를 넘어 북미 극장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 10월21일 국내 관객을 만나고,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시 상영을 앞둔 지금 세 감독의 다음 행선지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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