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는 작품들로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 후보를 미리 점쳐 볼 수 있기에, 업계는 흔히 베니스 영화제를 이듬해 오스카 레이스의 출발로 보기도 한다.
영국 매체 BBC는 지난 12일(현지시간) 폐막한 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영화들 중 일찌감치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거론되는 여섯 작품을 선정해 소개했다. 이 가운데는 은사자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도 포함됐다.
BBC에서 소개한 6편 영화의 면면을 살피면 내년 오스카 트로피의 향방도 미리 예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프라임타임
영화 ‘프라임 타임’은 올해 ‘오디세이’, ‘더 드라마’, ‘듄: 파트 3’ 등 다수의 영화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로버트 패틴슨의 또다른 주연작이다. ‘프라임 타임’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방영된 미국 리얼리티쇼 ‘To Catch A Predator’를 다룬다.이 프로그램은 함정수사로 아동성범죄자를 잡아내는 포맷으로 제작됐고 미국 내 각 주의 경찰당국과 협조하에 진행했다고 한다. 영화는 이 프로그램의 탄생부터 전성기, 그리고 그 이면에 존재했던 제작진의 모호한 윤리의식 등을 다루고 있다고 전해진다.
로버트 패틴슨은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자, 크리스 핸슨 역할을 맡았다. BBC는 패틴슨의 연기에 대해 “실제 핸슨과 똑같이 움직이고 말하면서도, 여기에 파충류 같은 위협감과 광기 어린 집착을 표현했다”고 평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경우 아카데미의 대접이 비교적 후했던 전력에 비춰 이제는 패틴슨이 첫 오스카 후보 지명을 받을 때가 된 것이 아니냐며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와일드 호스 나인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 존 말코비치에게 남우주연상을 선사한 영화 ‘와일드 호스 나인’도 목록에 포함됐다. ‘쓰리 빌보드’, ‘이니셰린의 밴시’ 등을 만든 마틴 맥도나 감독의 작품이다.‘와일드 호스 나인’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BBC는 영화의 주인공인 존 말코비치에 대해 “그는 언제나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묘함을 지닌 배우”라며 “이번 작품에서는 고통에 시달리는 노년의 암살자로서 감동적이면서도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존 말코비치가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다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두 번은 모두 남우조연상 후보였으나 이번에는 남우주연상으로서 33년만에 생애 첫 아카데미 수상에 도전하게 된다.
플레시 임팩트
이 영화는 17분의 단편영화로 마릴린 먼로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아카데미 단편영화 부문의 강력한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영화는 100세의 노인이 된 마릴린 먼로가 브로드웨이 연극의 오디션을 보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라 전해진다. 그 오디션 자리에서 먼로는 자신의 삶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100세의 먼로 역할을 93세의 엘런 버스틴이 맡았으며 젊은 시절 먼로는 다코타 존슨이 연기했다.
감독은 배우 메기 질렌할이 맡았고 각본도 썼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이 영화를 들고 한국 관객을 찾을 예정이라 더더욱 기대가 크다.
우먼 언노운
네 번째 영화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우먼 언노운’이다. 덴마크 출신 감독의 메이 엘투키가 연출했으며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영화들 가운데 유일한 여성 감독이다.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덴마크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유한 고용주와 결혼을 앞둔 젊은 가정부가 독일군 병사와의 과거 연애 사실이 드러나며 위기에 처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BBC는 “‘우먼 언노운’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 선을 넘을 수 있는지, 그리고 남성들이 여성을 향한 학대를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를 들여다본다”고 설명했다.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이 ‘버닝’ 이후 8년만에 내놓은 신작 ‘가능한 사랑’이 다섯 번째로 꼽혔다.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 2등에 해당하는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네 배우가 참여했고, 영화는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가능한 사랑’은 아쉽게도 극장에서 볼 기회는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진행중인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에버트 감독상’의 수상자로 이미 이창동 감독이 지목돼면서 한국 최초의 수상으로 기록됐다. 앞으로도 '가능한 사랑'은 뉴욕영화제, 취리히영화제, 밴쿠버 국제영화제 등에 잇따라 초청돼 올해 가장 주목받는 영화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내친 김에 오스카 레이스에 들어갈 경우 넷플릭스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도연은 벌써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물망에 오르고 있다.
머스크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남자, 일론 머스크를 다룬 장장 3시간 45분 길이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마지막으로 리스트에 합류했다. 알렉스 기브니 감독의 영화 ‘머스크’는 머스크의 유년기부터 실리콘밸리에서의 젊은 시절, 테슬라와 스페이스X 등의 기업을 이끌며 1조달러 이상의 부를 쌓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30여년의 일생을 다뤘다.이 영화에 대해 머스크 본인은 "(진실을)빗나간 공격적 작품이자 네 시간 동안의 지루함이라는 치명적인 죄를 저지른 영화"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머스크’의 제작사 블리커 스트리트는 이 영화로 오스카 작품상을 포함해 출품 가능한 모든 부문에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을 밝혔다고 알려지고 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먼저 관객과 평단의 눈도장을 찍은 작품들이 하나둘 오스카 후보에 거론되며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기대감도 벌써 커지고 있다. 어떤 영화와 배우가 내년 3월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게 될지,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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