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한국과 미국·중국을 잇는 공급망이 베트남 등 제3국을 거치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중 간 직접적인 경제 연계가 약해지는 동안 공급망 연결은 유지됐지만, 미국이 원산지 규정이나 우회 수출 조사 등 규제 강화할 경우 제3국에 가해진 통상 압력이 한국 기업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1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BOK 이슈노트 '지정학적 분절 속 글로벌 경제연계는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 보고서를 발간했다.
한은 조사국은 미·중 간 직접적인 경제 연계가 약화하는 과정에서 제3국의 생산·조달 네트워크가 글로벌 경제 연계를 유지시키는 '커넥터 국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커넥터 국가는 미국의 최종 시장과 중국 중심 생산망 모두와 연결돼 양측의 경제적 다리 역할을 하는 베트남, 인도, 멕시코 등을 말한다.
한국 공급망 역시 베트남 등 커넥터 국가를 거쳐 미·중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크게 강화됐다. 한국의 대(對)베트남 수출에서 창출된 부가가치 중 최종적으로 미국의 최종 수요(소비·투자)에 연결되는 비중은 2016년 11.1%에서 2022년 18.5%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중국 최종 수요로 이어지는 비중도 7.3%에서 13.9%로 상승했다.
특히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등 컴퓨터·전자·광학기기 업종에서는 이 같은 경유 현상이 더욱 뚜렷했다. 대베트남 수출 부가가치가 미국 최종 수요로 연결되는 비중은 12.8%에서 21.0%로, 중국으로 연결되는 비중은 11.2%에서 19.4%로 각각 대폭 상승했다.
한국산 중간재가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간접 경로에서 중국 경유 비중은 2016년 10.7%에서 2022년 6.8%로 낮아진 반면, 아세안 5개국 경유 비중은 4.9%에서 8.3%로 크게 확대됐다. 반도체·전자 업종의 경우 아세안 경유 비중이 18.6%까지 치솟으며 중국 경유 비중(17.0%)을 제쳤다.
문제는 이처럼 아세안 생산망을 통한 우회 연결이 늘어날수록 한국 기업이 감수해야 할 통상 및 공급망 리스크의 범위도 함께 확대된다는 점이다. 정선영 한은 아태경제팀장은 백브리핑에서 "제3국을 통한 연결이 경제적 연계를 견고하게 유지해 주는 완충 채널이 되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감수해야 할 잠재적 리스크도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직접 가해지는 미국의 관세 압력 외에도 베트남 등 커넥터 국가에 작용하는 우회 수출 조사나 원산지 규제 강화 등 제3국 리스크가 국내로 간접 파급되는 경로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며 "공급망 차원에서 우리가 관리해야 할 리스크의 범위와 정도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생산 경로가 길어짐에 따른 인플레이션 가능성과 공급망 단절 위험도 함께 확대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 팀장은 "아세안을 거치는 등 생산 노드(거점)가 늘어나고 신규 투자가 수반되면서 비용 측면은 과거보다 증가했다"며 "생산 거점이 길어진 만큼 중간에 병목 현상이 발생할 경우 전체 공급망이 멈춰 서는 단절 리스크는 코로나19 팬데믹 때처럼 더 커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아세안을 통한 완충 기능을 활용하는 동시에 주요국의 정책 변화나 제3국 생산망의 충격이 국내로 파급될 가능성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며 "특정 생산 거점이나 경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전략적인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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