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117년 만에 '석침총' 다시 발굴한다

  • 1909년 일제가 발굴…현대 고고학의 방법으로 새롭게 규명

  • 광복 이후 축적된 국립박물관의 다양한 과학적 분석 방법 적용

1909년 조사 당시 돌방 내부 사진경주박물관
1909년 조사 당시 돌방 내부 [사진=경주박물관]

1909년 일제가 조사한 신라 돌방무덤인 서악동 석침총(石枕塚)을 117년 만에 다시 발굴한다고 국립경주박물관이 10일 밝혔다. 

석침총이라는 이름은 무덤 안에서 ‘석침(石枕, 돌베개)’이 발견된 데서 비롯되었다. 1909년 조사에서는 돌방과 시상(屍床), 석침 등이 확인되었지만, 당시의 조사 기술과 기록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정식 발굴보고서도 발간되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전통적인 발굴뿐 아니라 광복 이후 크게 발전한 자연과학적 분석 방법 등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당시 일제 연구자들의 조사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조사 방법과 기록이 충분하지 않다. 더구나 한반도의 고대 문화를 일제의 시각에서 조사하고 해석하던 시대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1909년 조사 당시에는 무덤 내부 유물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오늘날 고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봉분의 축조 과정, 돌방과 봉분의 관계, 무덤길(묘도/墓道)과 무덤 둘레돌(호석/護石) 구조, 무덤이 만들어지고 행해진 제사 흔적 등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번 재발굴에서 기존 기록과 실제 유구를 정밀하게 대조하여 1909년 일제 조사자가 확인하지 못했거나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흔적을 찾아낼 계획이다.

특히 돌방의 구조와 축조 방법, 돌방 안 주검받침(시상/屍床)과 석침 등 매장시설의 성격을 다시 검토하고, 수습하지 못한 유물과 매장 흔적을 분석하여 석침총이 언제, 누구를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규명할 계획이다. 이번 재발굴과 함께 국립경주박물관은 1909년 석침총 조사 당시 출토되어 현재 일본 도쿄대학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에 대한 조사와 연구도 추진할 계획이다. 석침총 출토 유물은 조사에 참여한 야쓰이 세이이치가 일본으로 가져가 도쿄대 등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침총이 위치한 경주 서악동 고분군은 신라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한 대형 고분들이 집중된 신라사 연구의 핵심 지역이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해 광복 이후 체계적인 발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서악동 고분군의 조성 시기와 성격, 각 고분의 관계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박물관 측은 "이번 조사는 이러한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 첫걸음"이라며 "신라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에서 돌방무덤으로 장례 방식을 변화시켜 가던 과정과 서악동 고분군의 역사적 성격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되기를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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