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절벽과 수도권 쏠림 현상 속에서 지방 대학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반도체 초과 세수 등을 활용해 신설한 ‘미래대응기금’을 통해 지방 국립대 신입생 등록금 전액 지원 정책을 추진하자, 지방 사립대들은 ‘학생 싹쓸이와 생존권 위협’을 호소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아주경제>는 지방 국·사립대 간 격차 문제와 ‘무상 등록금’ 정책과 정부가 꺼낸 미래대응기금, 자율혁신대학 카드의 실효성을 따져보고자 한다. 이와 함께 교육·연구 경쟁력 강화 및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실질적 고등교육 해법을 진단한다. <편집자주>
사총협, 국립대 무상등록금 정책 강력 반발…국·사립대 구분 없는 균등한 지원 정책 촉구
31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는 정부의 국립대 무상등록금 방침에 강력히 반발하며, 국·사립대 구분 없는 균등한 지원 정책으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실제 통계도 사총협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대학알리미 및 고등교육 통계에 따르면, 지방 사립대의 비수도권 고등교육 학생 수용률은 70%를 상회한다. 지역 청년 대부분을 교육하는 주체가 사립대임에도 국내 고등교육 재정의 상당수는 여전히 국립대에 집중되는 구조적 불균형이 계속되어 왔다는 지적이다.사총협이 전국 고3 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역 국립대 무상 등록금 지원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방 국립대의 등록금이 전액 면제되더라도 과반수의 수험생은 여전히 수도권 대학 진학을 우선순위로 둔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히 학비 몇백만 원을 깎아주는 ‘비용 면제’만으로는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수 없으며, 대학의 교육 인프라, 연구 수준, 취업 연계성 등 ‘품질 경쟁력’이 담보되지 않는 한 정책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립대 교육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학생과 학부모는 단순한 ‘무상교육’이 아니라 ‘투자할 가치가 있는 양질의 교육을 원한다’”며 “등록금 보전이라는 선심성 포퓰리즘 예산 투입보다는 국·사립 구분 없이 학생당 교육비와 연구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재정을 투입해야만 지역 대학의 경쟁력이 살아난다”고 꼬집었다.
교육부, 공급자적 시각에 갇혀 있어…지역 특성화 사립대 고사 초래
교육부는 사립대의 거센 반발을 의식해 미래대응기금을 활용해 지방 사립대 대상 ‘지역인재장학금’ 지원을 1만 명 규모로 확대하고, 대학의 체질 개선을 전제로 재정을 선별 지원하는 ‘자율혁신대학’ 모델을 육성하겠다는 보완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책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실현 가능성과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붙는다.이주열 대학혁신지원사업총괄협의회 회장(남서울대 교수)은 “교육부가 고등교육 정책을 펼 때 대학 운영 주체인 국립과 사립이라는 공급자 중심의 시각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학생 관점에서는 국립대와 사립대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으며, 지역에 정주할 청년 전체를 대상으로 장학 혜택과 수혜가 돌아가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부가 제시한 ‘자율혁신대학’ 구상에 대해 “체질 개선을 전제로 내걸었지만, 본질은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을 강요하며 살아남는 대학만 끌고 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교육부가) 요건이나 조건을 달아 선별 지원하는 방식은 지역대학 활성화는커녕 대학 간 편차와 갈등만 더 두드러지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민현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인제대 총장)은 “국립대 무상교육처럼 대학 생태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중차대한 정책을 공청회나 토론회 등 현장과의 제대로 된 사전 소통 한 번 없이 추진하는 것은 매우 아쉽다”며 교육부의 소통 부재를 꼬집었다. 특히 전 회장은 “전북대(전주), 충남대(대전), 강원대(춘천), 부산대(부산) 등 거점국립대는 대부분 지정학적으로 지역 대도시에 위치해 있는 반면, 대다수 중소 규모 사립대는 인구 소멸 위험 지역에 위치해 있다”면서 “국립대 무상교육 정책이 강행될 경우 수도권 유출을 막는 효과는 거두지 못하면서 오히려 지역 내에서 대도시 국립대로 학생들이 쏠리는 수평 이동만 유발할 것이다. 지역 상황에 맞추면서 어렵게 특성화해 온 지역 사립대의 고사를 가속화하고 궁극적으로 지방 소멸을 더 부추기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력히 우려했다.
교육부 “국립대 무상교육은 오래된 요구…사립대 대상 ‘지역인재장학금’ 현장 의견 반영해 수혜 확대”
사립대와의 사전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국립대 지원 정책의 특성상 사립대학에 직접 사전 동의나 찬성을 구하는 의견 수렴 절차를 대놓고 거치기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면이 있었다”면서도 “대신 사립대가 직접적인 지원 대상이 되는 ‘지역인재장학금’ 개편 과정에서는 한국장학재단 등을 통해 사립대의 현장 목소리를 충분히 청취하고 반영했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예산을 800억 원 증액해 기존 국·사립 구분이 섞여 있던 지역인재장학금을 순수 ‘지방 사립대 전용’으로 개편하고 지원 규모를 매년 신규 기준 4000명에서 1만 명으로 파격 확대한다. 예 지원관은 “지원 기간이 짧다는 사립대의 요구를 반영해 7~8구간 학생 지원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등 사립대 학생들의 실질적 혜택을 늘리기 위한 현장 의견 수렴 조치를 이행했다”고 말했다.
고등교육 정책 수사(레토릭) 아닌, 관점의 대전환 제언
지난 28일부터 29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하계 대학총장세미나’에서도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의 한계와 구조 개혁을 요구하는 전국 대학 총장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세미나 현장에 참석한 사립대학 총장들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연구·교육 혁신을 추진할 수 있도록 포괄적 재정 지원체계로 전환해야 하며, 학생 중심의 지원 강화와 함께 과도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완화해 공공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정책적 결단이 시급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이렇듯 교육 전문가 및 대학 관계자들은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이 단순한 수사나 비용 보전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지역 인재의 취업·창업·정주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고등교육 전반에 대한 관점의 대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제언한다.
우선 등록금 면제와 같은 일회성 비용 지원을 넘어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된 융합 교육과정 및 첨단 연구 인프라를 구축해 대학의 교육·연구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대학의 실질적 경쟁력이 강화되어야 양질의 우수 인재와 기업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사립대 역시 지역 경제와 문화를 지탱하는 지역 공공 재화로서 공공성 개념을 확립하고, 설립 주체와 상관없이 학생 중심의 공정한 재정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 고등교육 정책은 교육부만의 과제로 해결될 수 없고 다각적 협력이 필요하다. 지자체 및 산업체와 연계된 주거·문화·일자리 등 범정부 차원의 지역 정주 생태계 구축과 강력하게 결합돼야 비로소 청년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다각적 접근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육부 고위 관료와 대학 총장을 지낸 교육계 한 원로는 “정부는 명분 위주의 지방국립대 등록금 무상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대학에는 파격적인 규제 완화와 자율적 재정권을 부여하고, 독자적 특성화 경쟁력을 가진 지방 사립대에는 차별 없는 공정한 재정 투입을 단행해야 한다. 한계 대학에는 사립대구조개선법 등을 통해 원활한 퇴로를 열어주는 거시적 고등교육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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