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봉법 쟁의범위 좁혔지만…삼성 '호남 투자' 갈등 막기엔 지침 한계

  • 신규투자·공장 증설 자체는 쟁의대상서 제외 방향…재계 우려 일부 반영

  • 법적 구속력 없어 노조·법원 판단 못 묶어…경총 "법률 개정까지 필요"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노란봉투법의 노동쟁의 범위를 좁히는 방향으로 보완 지침을 마련했지만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재계에서 나온다. 삼성전자가 400조원을 투입하는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를 놓고 최대 노조가 조합원 84%의 반대를 근거로 내년 교섭 의제화를 예고한 상황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신규 투자나 공장 증설 자체는 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방향으로 선을 그어도 법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지침인 만큼 비슷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31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오는 9월 3일 경영성과급과 기업 투자·공장 증설 등의 노동쟁의 대상 여부를 구체화한 시행지침을 공개할 예정이다. 노동부는 이날 양대 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만나 보완 방향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경영상 결정의 쟁의 범위를 둘러싼 혼선이 이어지자 사례별 기준을 보다 구체화하기로 한 것이다.

보완 방향은 당초 재계가 우려했던 것보다 다소 좁아졌다. 현행 지침은 합병·분할·매각이나 기업 투자·공장 증설 같은 경영상 결정 자체를 원칙적으로 교섭·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배치전환도 일반적인 인사 이동이 아니라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처럼 근로자의 지위와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를 대상으로 제시한다. 노동부 역시 기업 투자와 공장 증설 자체는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쟁도 이 기준대로라면 투자 결정 자체와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구분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광주에 40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팹 2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그러나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는 지난 7월 조합원 설문에서 프로젝트 반대가 84%에 달했다며 2027년 교섭에서 관련 내용을 다루겠다고 밝혔다. 개정 노조법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 결정까지 교섭 대상으로 넓혔다는 게 노조 측 판단이다.

재계에서는 신규 공장 건설과 이에 필요한 인력 재배치를 구조조정과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신규 투자는 기존 고용을 축소하는 과정이 아니라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한 경영 결정이라는 이유에서다. 경총은 지난 17일 공장 신설과 같은 고도의 경영상 의사결정은 단체교섭과 노동쟁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법원도 구조조정 실시 여부 등 고도의 경영상 결단은 원칙적으로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 경계를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아닌 행정지침으로 정한다는 점이다. 시행지침은 행정기관의 업무처리 기준으로 노사 당사자와 노동위원회·법원을 직접 구속하지 않는다. 노동부가 신규 투자와 구조조정을 구분해도 노조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실제 쟁의에 나서면 적법성은 다시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개별 판단을 받아야 한다. 정부의 해석이 바뀌면 지침 자체가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 같은 한계를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노동쟁의 범위를 구체화할 기준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데 이어 이달에는 김영훈 노동부 장관에게 "해석은 그냥 의견일 뿐"이라며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법령 정비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노동부는 그러나 노조법에 쟁의 범위를 하위법령에 위임한 명시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지침을 택했다. 시행령으로 쟁의 범위를 제한할 경우 노동3권을 행정부가 축소한다는 위헌·월권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재계가 보완 지침의 내용을 넘어 법적 효력을 문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영국·일본·독일 등 주요국은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투자와 공장 신설 등 경영 결정 자체와 이에 따른 해고·배치·보상 문제를 구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신규 투자 결정과 그로 인해 근로자에게 발생하는 구체적인 불이익을 나눠 다뤄야 기업의 경영권과 근로자의 권리를 함께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총은 공장 신설 등 고도의 경영상 결정이 노동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을 시행령·시행규칙 등을 통해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사업상 결정 가운데 근로자의 이해관계와 완전히 무관한 경우는 많지 않다"며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면 시행령에 세부 기준을 위임하는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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