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대 뇌물' 전 경무관 2심서 집행유예…공수처 "수긍 어려워"

  • 차명계좌 입증 부족·압수 절차 위법 판단…핵심 뇌물 혐의 무죄

  • 일반인 공여자 등 공소기각…"판결문 면밀히 검토 후 상고 결정"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김모 경무관이 지난 2023년 12월 7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두번째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김모 경무관이 지난 2023년 12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두 번째 영장심사를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업 관련 청탁과 함께 7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김모 전 경무관이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로 대폭 감형됐다. 재판부는 김 전 경무관이 차명계좌를 통해 6억여 원을 받았다는 핵심 뇌물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일반인인 뇌물 공여자 등을 기소할 권한도 없다고 봤다.

서울고법 형사3부(이승한 부장판사)는 25일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뇌물)과 청탁금지법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경무관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약 1억1016만원의 추징도 명령했다.

1심은 지난 2월 김 전 경무관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16억원을 선고하고, 약 7억5000만원을 추징하라고 명령했다. 김 전 경무관은 당시 법정 구속됐다.

김 전 경무관은 사업가 A씨로부터 불법 장례 사업과 형사 사건 등이 원활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담당 경찰관에게 알선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2020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약 7억7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수처는 김 전 경무관이 A씨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자신의 오빠와 지인 명의의 계좌를 통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했다. 이 사건은 공수처가 2021년 출범한 뒤 자체적으로 범죄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착수한 첫 인지 사건이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A씨 측이 약 6억3000만원을 송금한 계좌를 김 전 경무관의 차명계좌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전 경무관이 계좌를 일부 관리하고 입출금에 관여한 정황은 인정되지만, 명의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좌를 전적으로 지배·관리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계산으로 계좌에 입금된 돈을 입출금해 사용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김 전 경무관의 차명계좌라는 전제에서 A씨로부터 유래한 6억3000만원이 입금됐다는 사정만으로는 A씨가 김 전 경무관에게 지급한 돈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 전 경무관의 특정범죄가중법상 뇌물과 범죄수익은닉규제법·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노트북 등 전자제품을 받은 부분도 알선의 대가로 건넨 금품이라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A씨가 김 전 경무관에게 잘 보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더라도 이 같은 사정만으로는 알선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다만 김 전 경무관이 A씨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전자제품을 받는 등 1억1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행위에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인정됐다. 타인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행위에도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죄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고위 경찰공무원인 피고인이 지인에게서 신용카드를 받아 사용하고 노트북 등 전자제품을 받는 등 4개 회계연도에 걸쳐 매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했다"며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제재해 공직 청렴성과 신뢰를 보장하려는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수수한 금품이 1억원을 넘고 범행이 약 2년 7개월간 이어진 점 등도 불리한 사정으로 고려했다. 30년가량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한 점과 1심에서 법정 구속된 뒤 약 6개월간 수감된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재판부는 공수처의 증거 수집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공수처가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피압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아 적법 절차 원칙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피압수자 측의 절차 참여를 보장한 법의 취지가 실질적으로 침해됐다"며 휴대전화에서 확보한 일부 자료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뇌물공여 혐의로 함께 기소된 A씨와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를 받은 김 전 경무관의 오빠와 지인에게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공수처법상 공수처 검사가 고위공직자나 그 가족이 아닌 일반인을 직접 기소하고 공소를 유지할 권한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 등에 대한 공소는 기소권이 없는 공수처 검사가 제기한 것으로 법률 규정을 위반해 무효"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공수처는 일반인인 뇌물 공여자에 대한 기소권을 부정한 항소심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상고 가능성을 내비쳤다. 공수처는 판결 직후 언론 공지를 통해 "뇌물수수죄와 대향적 공범 관계인 뇌물 공여자에 대해 공수처에 기소권이 없다는 설시는 종전 김모 전 부장검사 사건과도 다르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은 출범 후 처음 기소한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사건이다. 공수처는 2022년 김형준 전 부장검사와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은 박모 변호사를 함께 기소했다. 박 변호사가 고위공직자나 그 가족에 해당하지 않았지만, 당시 법원은 공수처의 기소권을 부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공수처는 "뇌물수수죄와 뇌물공여죄가 필요적 공범 관계에 있다는 범죄의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판단으로 수긍하기 어렵다"면서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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