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아르코]
"햄릿마냥 고민만 하면 기관장을 왜 하겠어요."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 위원장은 임기 3년을 '실행의 시간'으로 본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만난 그는 "무엇이든 가시적으로 만들기 위해 뛰고 있다"며 "아무리 좋은 생각도 실행하지 않으면 도루묵"이라고 말했다. "꿈꾸고 액션하는 것, 그게 제가 할 일이죠."
그가 구상하는 그림은 아르코를 아시아 예술의 교류를 잇는 중심축으로 만드는 것이다. K-팝과 드라마, 영화가 세계에 K-컬처를 각인시킨 가운데 이제는 기초예술이 세계로 뻗어나갈 통로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한국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예술가와 기획자, 기관이 오래 관계를 맺는 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아르코]
첫 시험대는 '아시안 아트 라운드테이블(AAR)'이다. 오는 10월 서울과 광주에서 열리는 AAR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의 차세대 큐레이터들이 모인다. '아시아, 공동체, 영성, 이주'를 주제로 베이징 UCCA, 홍콩 M+, 타이쿤 컨템퍼러리 등 한·중·일·대만의 큐레이터 17명을 포함해 국내외 시각예술 전문가 30여 명이 참여한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과 필리 전 홍콩 타이쿤 예술감독, 마미 가타오카 일본 모리미술관 관장이 자문 큐레이터로 함께한다.
지정학적 긴장이 절정에 달한 중국과 대만의 큐레이터가 테이블에 같이 앉는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정치·외교 영역에서는 양안 긴장이 높지만 예술가들은 머리를 맞대고 '아시아'를 생각한다.
이 위원장은 "'함께한다'는 열린 비전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공식 교류 시 대만이 참여하기 쉽지 않은 점을 거론하며 교류를 국가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예술가와 기획자가 직접 연결되는 다층적 네트워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순수예술기관과 순수예술가 그룹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장기 프로젝트를 만드는 등 아시아에 특화된 문화교류·협력 사업을 의미 있게 펼치고 싶어요."
"먹으로 맺은 中 인연…지금이 재건 적기"
동양화를 전공한 이 위원장은 붓과 먹의 전통을 공유하는 중국 미술계와 자연스레 인연이 이어졌다. 먹을 쓰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2017~2020),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한국예총) 회장(2020~2024) 재임 시기 등 오랜 기간 중국 미술계와 교류했다. 2019년 산둥성 공자관광대사로 위촉됐고, 이듬해에는 한·중 작가 다수가 참여한 현대미술 교류전 '예술과 평화'를 열었다. 2021년에는 '쓰촨 교류제'로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이 과정에서 중국의 ‘관시(關係)’를 배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밥을 먹고 신뢰를 쌓을 때 교류의 물꼬가 트인 것. 이는 그가 구상하는 국제 교류 방식과 닿아 있다. 행사 종료 시 관계가 끝나는 ‘점’의 교류가 아닌 다음 만남과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선’의 교류다.
이 위원장은 "코로나로 인해 전반적으로 멈춘 한·중 교류를 재건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적기다. 2025년 경주 APEC을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 이후 관계 복원에 대해 양국 간에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판단이다.
"정부 간에는 경직될 수밖에 없는 현안이 있기 마련이죠. 그걸 넘어 유연하게 교류를 선도할 수 있는 게 문화예요. 문화예술 전문기관인 아르코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유죠."
그는 이 과정에서 중국의 ‘관시(關係)’를 배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밥을 먹고 신뢰를 쌓을 때 교류의 물꼬가 트인 것. 이는 그가 구상하는 국제 교류 방식과 닿아 있다. 행사 종료 시 관계가 끝나는 ‘점’의 교류가 아닌 다음 만남과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선’의 교류다.
이 위원장은 "코로나로 인해 전반적으로 멈춘 한·중 교류를 재건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적기다. 2025년 경주 APEC을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 이후 관계 복원에 대해 양국 간에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판단이다.
"정부 간에는 경직될 수밖에 없는 현안이 있기 마련이죠. 그걸 넘어 유연하게 교류를 선도할 수 있는 게 문화예요. 문화예술 전문기관인 아르코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유죠."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아르코]
교류의 새 패러다임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공식 문화행사로 한·중·일 작가가 참여한 평화 미술제를 개최했다. 이를 확장해 예술을 통한 소통을 촉진하는 평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아르코 위원장이 됐으니 과거보다 더 크고 알차게 해볼 수 있지 않겠어요. 주한중국대사관이나 주한중국문화원과도 필요하면 협약을 제안하려고 해요. 제가 아르코를 떠나도 교류가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거예요."
국내가 탄탄해야
이 위원장은 국내 문화·예술의 기반이 탄탄해야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르코는 서울과 나주를 두 축으로 창작-유통-향유-데이터가 순환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혜화역 반경 1㎞ 안에 소극장 160여 곳이 몰린 대학로의 실험성과 창작성을 살리고, 아르코 본관이 있는 나주시에서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과 연계해 문화수도의 심장 역할을 하는 '아르코 빌리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는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문화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인구 소멸 지역을 찾아서 놀고, 먹고, 자고 갈 이유를 만들어야 해요. 섬세한 디테일에서 나오는 문화·예술 경험이 지방 살리기의 핵심이 될 수 있어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시골 마을을 문화 콘텐츠 관점에서 개발할 필요가 있죠."
과거 중국 산둥성 방문 시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마을에서 본 경극 공연이 지역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경극을 손주와 손녀들이 무대에 올리더군요. 우리나라도 집성촌이나 농어촌 마을의 스토리를 발굴해 연극이나 뮤지컬로 만들어야 해요."
그는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문화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인구 소멸 지역을 찾아서 놀고, 먹고, 자고 갈 이유를 만들어야 해요. 섬세한 디테일에서 나오는 문화·예술 경험이 지방 살리기의 핵심이 될 수 있어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시골 마을을 문화 콘텐츠 관점에서 개발할 필요가 있죠."
과거 중국 산둥성 방문 시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마을에서 본 경극 공연이 지역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경극을 손주와 손녀들이 무대에 올리더군요. 우리나라도 집성촌이나 농어촌 마을의 스토리를 발굴해 연극이나 뮤지컬로 만들어야 해요."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아르코]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광주 인근에 각국이 독자적인 국가관을 지을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아이디어도 갖고 있다. "광주 주변에 제2의 필드를 만드는 거죠. 짝수 해에는 기존 미술 비엔날레를, 홀수 해에는 AI 미디어아트를 다루는 거예요."
세계 무대로 향하는 관문도 손볼 생각이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감독과 작가를 발굴하는 방식에 변화를 줄 계획이다. 기존 공모제는 유지하되 추천형 발굴 방식을 일부 도입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별도 전문가들이 암행어사처럼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심사 대상을 찾는 안도 들여다보고 있다. "20% 내외라도 추천제 지원 방식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시도할 계획이죠."
이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소명의식'을 꺼냈다.
"임기가 끝나는 3년 뒤 어떤 평가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던지겠다는 소명의식뿐이죠. 최선을 다하면 남는 게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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