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창(窓)] 우리는 언제부터 여름을 견디기 시작했을까

지난 18일 울산시 동구 대왕암 바닥분수 공원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정종우 기자
지난 18일 울산시 동구 대왕암 바닥분수 공원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정종우 기자]


어릴 적 여름은 기다려지는 계절이었다.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면 마음은 어느새 계곡으로 향했고, 마당을 가득 메운 매미 소리는 하루를 길게 이어주었다. 해 질 무렵 골목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밤이면 대청마루 선풍기 바람에도 깊은 잠이 들곤 했다.

물론 그때도 더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시절의 여름을 더위보다 추억으로 기억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여름을 기다리기보다 걱정하게 된 것은.

이제 아침 뉴스는 폭염특보부터 전하고, 사람들은 최고기온보다 체감온도를 먼저 확인한다. 외출을 준비하며 설렘보다 한숨이 먼저 나오고, 한낮의 공원은 사람보다 그늘이 더 귀해졌다.

여름은 어느새 즐기는 계절이 아니라 버텨내는 계절이 됐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마다 폭염은 길어지고 열대야는 일상이 됐다. '역대 최고기온'이라는 말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자연은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같은 여름도 모두에게 같은 계절은 아니다.

에어컨이 켜진 사무실의 여름과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여름은 다르다. 달궈진 철판 앞의 조선소 노동자, 땡볕 아래 건설 현장을 지키는 근로자, 택배기사와 환경미화원, 그리고 논밭을 지키는 농민에게 폭염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하루를 버텨야 하는 삶의 현장이다.

같은 36도라도 누군가는 냉방기 앞에서 견디고, 누군가는 햇볕 아래에서 견딘다.

그래서 폭염은 더 이상 날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심의 그늘막 하나가 누군가의 탈진을 막고, 시원한 물 한 병이 사고를 예방한다. 도시가 얼마나 많은 그늘을 만들고, 얼마나 세심하게 약자를 살피느냐는 결국 그 도시의 품격이 된다.

울산은 산업도시다.

그래서 여름이면 누구보다 먼저 뜨거워지는 도시이기도 하다. 거대한 공장과 철판, 아스팔트 위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오늘도 땀을 흘린다. 울산에서 폭염은 계절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안전이고, 노동의 가치이며, 시민의 삶이다.

여름은 또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맞이할 여름은 어제의 여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기후는 이미 변했고, 도시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이 여름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보다 '어떻게 함께 견디게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언젠가 여름이 다시 기다려지는 계절이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계절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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