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는 외견상 완연한 봄날이다.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고 국가 경제 성장률 역시 장밋빛 전망 일색이다. 빛 아래 그늘이 있듯 호황의 이면에는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반도체 경기 호조의 실물 경제 파급 효과’ 보고서를 통해 던진 화두인 ‘네덜란드병’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그것이다.
네덜란드병은 1959년 북해에서 거대한 천연가스 유전을 발견한 네덜란드가 자원 호황 뒤에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은 현상에서 유래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 추산치(약 639조 원)는 두 기업을 제외한 국내 전체 상장사 영업이익 합산액(약 308조 원)의 2배를 웃돈다. 국가 경제 전체를 두 기업이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반면, 같은 반도체 업종의 소부장 기업들의 실적은 보잘것없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의 약 60%를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 막대한 시설 투자가 집행되더라도 대부분 해외로 다시 빠져나갈 수 밖에 없어 고용 창출이나 내수 진작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느슨하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기업들의 이익을 ‘초과 이익’이라 명하며 사회적으로 분배하거나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 부처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김정관 산업통상부자원부 장관은 AI 시대를 맞아 기업의 초과 이익을 산업에 재투자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회적인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다.
네덜란드병, 대만병의 원인은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다. 호황이 가져다준 단기적 풍요에 취해 그 돈을 선심성 지출로 소비해 버렸기 때문에 발생했다.
때문에 기업의 초과 이익을 인위적으로 나누자는 주장은 네덜란드병을 악화시키는 독약에 가깝다. 어떤 산업이던지 역대급 호황 뒤에는 혹독한 불황이 기다린다. 호황기에 벌어들인 초과 이익은 불황기를 버텨낼 든든한 맷집이자, 차세대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재원이다. 정치권의 분배론은 눈앞의 표심만을 노린 통계적 착시이자 포퓰리즘의 전형에 가깝다.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산업이다. 반도체 대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낙수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대기업의 호황이 국내 협력업체의 매출 증대와 고용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상생과 분배’다.
여기에 더해 막대한 자금과 인재가 반도체에 몰리지 않도록 바이오, 이차전지, AI 서비스 등 대한민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을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사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정치권에서 선심 쓰듯 쓸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재분배 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만이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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