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관련 나라가 뒤숭숭하다. 왜 호남이냐 하는 점과 정부가 깔아놓은 판에 기업이 참가하여 투자 계획을 발표하였다는 점에서 과연 자발적인가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메가 프로젝트 추진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로봇·자율주행차·스마트 가전 등 물리적 실체를 가진 기기가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지하고 판단해 행동하는 인공지능 기술인 ‘피지컬 AI’ 붐을 타고 수요 급증이 예상되는 AI 반도체(NPU, 저전력 메모리 등) 부문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 당위성은 충분하다. 이런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우월적 선도자가 될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하냐는 점에서 걱정이 앞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하더라도 쓸모 있게 만들어 놓아야 비로소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짚고 넘어야 할 현안들이 수두룩하다. 우선은 우리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경쟁자들의 동향을 충분히 파악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필요충분조건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 후 보완책을 서둘러야 함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왜 우리 해당 기업이나 이를 지켜보는 전문가들이 정부보다 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를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관련 인프라 구축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대형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자칫 정치적 구호에 그치면서 정권이 바뀌기라도 한다면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시점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에 대한 예측이다. 항간의 거품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요는 여전히 상승일로지만 수년 후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가 않다. 반도체 자립을 위한 투자를 지속해서 늘리고 있는 중국은 범용 D램 생산 능력을 빠르게 늘리고 있고, 최첨단 HBM 분야에서도 한국·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대폭 줄이고 있다. 그 격차가 3년 내로 좁혀지고 있고, 낸드 특허 부문에서는 한국을 압도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장비·양산·투자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애플마저 미국 정부에 중국산 사용에 대한 규제 해제를 요청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 반도체 수출 1위 국가는 여전히 중국(홍콩 포함 시 40% 이상, 미국은 4위)이지만 해마다 그 수출 비중이 하락하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현상은 미·일 반도체 동맹의 부활이다. 1990년대 미·일 반도체 전쟁 결과로 일본이 희생양이 되면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급부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반도체 소재나 장비를 놓고 보면 일본은 여전히 강자다. 최근 인공지능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편승해 미국의 마이크론이 일본 반도체 부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한국·대만의 독주에 제동을 걸려는 일련의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대만의 TSMC까지 일본 구마모토에 첨단 메모리 제조 공장 투자를 결정하여 긴장감을 높인다. 미국·일본·대만의 반도체 삼각편대는 미국(원천기술 및 설계)·대만(파운드리 제조)·일본(소재·부품·장비)이 상호 보완하며 AI 등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하려는 동맹에서도 한국은 제외되어 있다.
글로벌 경쟁에 뒤지지 않는 속도전 전개, AI 주권 견지와 주도적 공급망 참여
한편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에 ‘AI 가치사슬’이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얼마 전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한 엔비디아 총수 젠슨 황이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AI 생태계 축에 한국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GPU(그래픽 처리장치)에 이어 피지컬 AI로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한국 기업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엔비디아 우산’에 갇혀 버리면 운신의 폭이 위축되기 마련이다. 협력은 하되 독자적인 AI 주권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대만 기업의 움직임은 놀랍다. 우리 기업이 단품 칩에만 열중할 때 대만 기업은 반도체 의존에서 탈피, 서버·컴퓨터·반도체 기판 및 PCB, 케이블 및 커넥터 등 주변기기를 포함한 첨단 패키징을 키우면서 글로벌 AI 생태계를 호령하려 한다. TSMC를 넘어 제조업 전체를 AI 산업화함으로써 올해 대만의 경제성장률이 무려 9.6%로 전망된다.
국내 문제로 눈을 돌려보더라도 이번 메가 프로젝트를 실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동반되어야 한다. 현 정부의 실용성이 추진 과정에서 검증될 수도 있다. 기업의 투자 심리 제고를 위해 시행 과정에서 개선 요구 목소리가 큰 주52시간제, 노란봉투법 등을 기업친화적으로 조정해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세수 초과분을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것도 좋지만 한시적으로라도 법인세를 낮춰주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밖으로 나가려는 기업을 안에 묶어 두려면 이에 걸맞은 당근책을 충분하게 제공해야 한다. 전력 공급을 위한 원전 확대와 공업용수 확보를 위한 수자원 인프라 구축에 대한 비전도 명료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에 반대했던 과거와의 청산이 메가 프로젝트 시동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음을 대외에 천명할 수 있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투자의 시기와 방법 등 최종 선택에 대해서는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글로벌 시장 추세에 맞추어 기업이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데 역량을 집중할 때다. 좁혀오는 중국과 미·일, 그리고 대만의 반도체 포위망과 속도전에 뒤지지 않도록 K반도체가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민관이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AI 생태계 조성이다. 특정 대기업에만 수혜가 돌아갈 것이 아니라 AI 패키지 산업을 동시에 육성시켜 이익의 균등 배분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도 중요하지만 기존 기술에 AI를 접목한 상용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AI 주도권을 견지하면서 글로벌 가치사슬에 깊숙이 발을 들여다 놓아야 한다. 외화내빈의 우(愚)를 범하지 않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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