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이 유럽 전역을 강타하면서 에어컨 보급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냉방기기 보급을 억제해온 기존 정책과 폭염으로부터 시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유럽의 기온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에어컨에 대한 유럽인의 저항이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은 그동안 에어컨 보급률이 세계 주요 지역 가운데 낮은 편에 속했다. 오래된 건축물의 외관을 훼손하고 소음이 크다는 이유뿐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늘리는 냉방기기의 확산이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역행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어지는 극심한 폭염은 이러한 인식을 흔들고 있다. 폭염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의료체계와 산업 활동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면서 냉방시설 확충 필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 ING은행은 지난달부터 이어진 폭염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봉쇄 조치에 버금가는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에어컨이 없는 학교들이 잇따라 휴교하면서 부모들의 경제활동이 차질을 빚었고, 상점과 공장 운영이 위축됐으며 철도 운행에도 장애가 발생했다. 병원과 요양시설 상당수에도 냉방시설이 부족해 폭염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프랑스와 영국은 대표적으로 에어컨 설치 규제가 엄격한 국가로 꼽힌다. 영국 런던은 신축 건물에 에어컨을 설치하기 전에 자연 환기, 차양시설, 단열 강화 등 건물 내부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설계를 우선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화되는 폭염 앞에서는 에어컨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 수단이라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폭염 대응 수단 가운데 에어컨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했다. 반면 기계식 환기는 중간 수준, 도심 녹화사업은 상대적으로 효과가 낮은 대응책으로 분석했다.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병원의 신생아와 환자, 노인들이 이런 폭염을 견디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폭염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에어컨 보급 확대를 촉구했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 역시 학교와 병원 등 공공시설에 냉방 설비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모나크 바르뷔 프랑스 기후부 장관은 "에어컨 설치가 산불을 막아주거나 농작물 피해를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드리 풀바르 파리 부시장도 "우리의 목표는 소음과 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에어컨이 건물 외벽을 뒤덮은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무분별한 에어컨 확산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친환경 정책과 갈수록 심각해지는 폭염에 대응해야 하는 현실이 충돌하면서 유럽 사회의 '에어컨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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