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폭염에도 선풍기뿐…유럽이 에어컨 설치를 쉽게 못하는 이유

  • 폭염 길어지는데 냉방은 '사치품' 인식 여전

  • 기후위기 대응과 전력 소비 사이 고민 커져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분수에서 열을 식히는 사람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분수에서 열을 식히는 사람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기후변화로 유럽의 여름이 갈수록 더워지고 있지만 에어컨 보급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유럽에 폭염이 일상화하면서 냉방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높은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 도시 열섬 현상 등이 빈번해졌다. 이로 인해 유럽은 냉방 확대와 기후 대응 사이에서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고 미국 CNN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최근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이 예년보다 더 이른 시기에 찾아오고 있으며 지속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은 여전히 에어컨 대신 선풍기와 얼음찜질, 찬물 샤워 등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가정의 약 90%가 에어컨을 갖춘 반면 유럽의 보급률은 약 20%에 그친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유럽에서 냉방 설비가 쉽게 확산되지 않는 이유는 역사적·경제적·정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관계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비교적 최근까지 에어컨이 절실한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냉방 문화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북유럽을 중심으로 과거에는 장기간 이어지는 극심한 폭염이 드물었다. 이 때문에 에어컨은 필수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여겨졌으며 설치와 유지 비용 부담도 보급 확대를 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유럽은 미국보다 전기요금이 비싼 반면 평균 소득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가 많아 냉방비 부담도 크다.
 
건축 환경 역시 영향을 미쳤다. 남유럽의 전통 건축물은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 자연 환기를 고려한 구조로 설계돼 인공 냉방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면 영국 등 다른 지역의 주택은 더위보다 추위를 견디는 데 초점을 맞춰 지어졌으며, 오래된 건물이 많아 냉방 시스템을 설치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영국에서는 전체 주택의 약 6가구 중 1가구가 1900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규제도 걸림돌이다. 영국에서는 실외기 설치가 건물 외관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특히 문화재 보호구역이나 역사적 건축물에서는 설치 허가가 거부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CNN은 전했다.
 
기후정책도 에어컨 확산을 제약하는 요소다. 유럽연합(EU)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에어컨은 전력 소비가 많은 데다 실외로 열을 방출해 주변 기온을 높인다. 파리를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서는 에어컨 사용으로 도시 외부 기온이 약 섭씨 2~4도 높아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인구 밀도가 높은 유럽 도시에서는 이러한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난다.
 
실제로 스페인은 2022년 공공시설의 에어컨 설정 온도를 섭씨 27도 이하로 낮추지 못하도록 하는 에너지 절약 규정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유럽이 세계 평균보다 약 두 배 빠른 속도로 온난화되면서 냉방에 대한 인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IEA는 유럽연합 내 에어컨 보급 대수가 2019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 2050년에는 2억75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어느 냉방업체 대표는 "최근 5년간 주거용 에어컨 문의가 세 배 이상 증가했다"며 "이번 폭염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새벽 3시에도 더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에어컨이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수단이지만 화석연료 기반 전력 사용이 계속될 경우 오히려 기후변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라디카 코슬라 교수는 CNN에 "화석연료로 가동되는 에어컨은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고, 이는 다시 지구온난화를 가속해 더 심한 폭염을 초래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CNN은 끝으로, 향후 유럽의 과제는 냉방기기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최소화하는 과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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