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기업 제조업 체감경기가 약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개선됐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원유·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관련 수요가 경기를 떠받쳤다. 엔화 가치가 약 4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밀리며 수입물가 부담은 커졌고, 기업들이 비용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하는 움직임도 확산돼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론에 힘이 실린다. 다만 정부가 금리 인상을 견제하고 있다는 관측이 맞서면서 엔화 약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행이 1일 발표한 6월 전국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단관)에서 대기업 제조업의 업황판단지수(DI)는 +22로, 3월 조사보다 5포인트 올랐다. 5분기 연속 개선으로 2018년 3월 이후 약 8년 만에 가장 높았다. 민간 이코노미스트들은 악화를 예상했지만, 실제 결과는 시장 예상치(+16)를 크게 웃돌았다.
대기업 비제조업의 DI도 +37로, 3월 조사보다 1포인트 올랐다. 1991년 8월 이후 약 3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DI는 경기가 좋다고 답한 기업 비율에서 나쁘다고 답한 기업 비율을 뺀 수치다. 이번 조사는 5월 28일부터 6월 30일까지 진행됐으며, 조사 대상 기업의 99% 이상이 응답했다.
일본공작기계공업회에 따르면 5월 공작기계 수주액은 전년 동월보다 38% 늘어난 1770억 엔(약 1조7000억원)으로, 11개월 연속 증가했다. 데이터센터와 발전 설비, 반도체 제조장비 관련 수요가 일본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다케모토 준야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닛케이에 “AI·반도체 관련 수요의 혜택은 특정 업종이 아니라 폭넓은 분야에서 나타났다”고 말했다.
비제조업에서는 숙박·음식서비스와 소매 업종이 상대적으로 강했다. 숙박·음식서비스 DI는 12포인트 오른 +46, 소매는 7포인트 오른 +33이었다. 5월 방일객은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도 유럽과 미국 등 장거리 지역을 중심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인건비와 원재료비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하는 움직임도 업황 개선에 보탬이 됐다.
다만 업종별 온도 차는 컸다. 원유와 원자재 가격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멘트·유리 등 요업·토석제품 DI는 14포인트 떨어진 +11이었다. 금속제품도 5포인트 하락한 +11, 자동차는 1포인트 낮아진 +12에 그쳤다. AI 수요의 혜택을 받는 업종과 에너지·원자재 비용 부담이 큰 업종 사이의 격차가 벌어진 셈이다.
엔화 약세는 또 다른 변수다. 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이 2026년도 사업계획의 전제로 삼은 환율은 전체 산업 기준 1달러=152.57엔이었다. 그러나 1일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한때 달러당 162.77엔까지 밀려 약 40년 만의 최저치를 새로 썼다. 기업들의 예상보다 10엔가량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진 셈이다. 수출기업에는 수익성 개선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원유와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기업에는 비용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기업들도 물가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봤다. 전체 기업이 예상한 1년 뒤 물가 상승률은 2.7%로 2023년 3월 이후 가장 높았다. 원가 상승분을 제품·서비스 가격에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강해졌다. 라쿠텐증권경제연구소의 아타고 노부야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닛케이에 “인플레이션 위험은 높고, 이번 조사 결과는 일본은행의 매파적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체감경기 개선이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대기업 제조업의 향후 업황 전망은 +17로, 이번 조사보다 5포인트 낮았다. 비제조업 전망도 +28로 9포인트 하락했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조달 차질을 우려해 수요를 앞당긴 기업도 있어, 비용 상승과 소비 둔화, 인력 부족이 앞으로의 부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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