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형의 유통맵] 물건 대신 경험 판다…'콘텐츠 매장' 전성시대

  • 작년 국내 팝업스토어 3371개 오픈…전년 대비 96% 증가

  • 식품·외식업계, 소셜미디어 확산 겨냥 공간 연출 경쟁 치열

버거킹 노량진점 전경 사진버거킹
버거킹 노량진점 전경 [사진=버거킹]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한 버거킹 매장 외벽이 대형 어망과 부표로 뒤덮였다. 건물 전면에는 어부로 변신한 배우 유해진의 대형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 해산물을 활용한 신제품 ‘보일링 씨푸드 버거’를 알리기 위해 수산시장으로 유명한 노량진의 지역성을 매장 전체에 입힌 것이다.
 
매장 앞을 지나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햄버거를 주문하지 않더라도 사진을 찍고 온라인에 공유하는 순간, 점포는 제품을 파는 장소를 넘어 하나의 광고이자 콘텐츠가 된다.
 
식품·외식업계가 오프라인 매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배달과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가격과 편의성만으로는 고객을 매장까지 불러오기 어려워졌다. 반대로 공간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장면과 이야기를 만들어 방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전략이 확산하고 있다.
 
팝업스토어 증가세는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30일 팝업 전문기업 스위트스팟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팝업스토어는 3371개로 전년보다 약 96% 늘었다. 이 가운데 패션과 지식재산권(IP)에 이어 식품 분야가 세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팝업이 단순한 제품 전시나 할인 판매 행사를 넘어 브랜드를 체험하는 핵심 접점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제품 진열 넘어 ‘브랜드 체험장’으로
 
최근 식품기업들은 제품을 진열하기보다 브랜드 세계관을 공간에 옮기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농심은 신라면 출시 40주년을 맞아 16일 서울 성수동에 ‘신라면 분식’을 열었다. 1·2층 약 120평 규모의 공간에 캐릭터와 한정판 상품, 참여형 콘텐츠를 배치했다.
 
이곳은 짧게 운영하고 철수하는 일반적인 팝업과도 다르다. 농심은 오는 11월까지 약 6개월간 매장을 운영하며 방문객 반응과 의견을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활용할 계획이다. 공간을 브랜드 홍보와 시장조사를 동시에 수행하는 ‘안테나숍’으로 만든 것이다.
사진CJ제일제당
서울 성수동에서 진행된 CJ제일제당의 소바바 치킨 팝업. [사진=CJ제일제당]
 
CJ제일제당도 치킨 브랜드 ‘소바바’를 독립 브랜드로 출범시키며 성수동에 디지털 콘텐츠 속 세계관을 재현한 팝업을 열었다. 게임과 퀴즈, 포토존을 마련해 소비자가 브랜드 이야기에 직접 참여하도록 했다. 19~21일 2500명 이상이 방문했고, 관련 콘텐츠는 소셜미디어에서 155만명 이상에게 노출됐다.
 
제품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수천명이지만 공간에서 만들어진 사진과 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수백 배 많은 소비자에게 전달됐다.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공간은 방문객에게 브랜드를 체험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생산된 사진과 영상을 온라인으로 확산시키는 미디어 채널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수 브랜드를 젊은 세대의 놀이 콘텐츠로 재해석한 사례도 있다. 롯데웰푸드가 서울 관악구 샤로수길에 선보인 ‘돼지바 빵집 since 1983’은 문을 연 지 열흘 만에 누적 방문객 1만2000명을 넘어섰다.
 
방문객이 직접 제품을 꾸미는 ‘커스텀 돼지바빵 만들기’와 ‘밤티 돼지바빵 꾸미기 콘테스트’ 등 참여형 프로그램을 마련해 큰 호응을 얻었다. 신제품 ‘돼지바빵’도 출시 두 달 만에 약 540만개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주류업계도 제품 시음 중심에서 함께 즐기는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간 마케팅을 확대했다. 오비맥주는 월드컵을 맞아 서울 강남역 일대에 ‘카스 FIFA 월드컵 팬 베이스캠프’를 조성·운영했다.
 
축구 게임과 퀴즈, 단체 관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수도권 주요 스포츠펍과 외식업소를 ‘카스 뷰잉펍’으로 꾸몄다. 제품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월드컵을 즐기는 장면 속에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녹였다. 팝업스토어에는 개장 일주일 만에 약 5500명이 다녀갔다.
 
이처럼 체험형 공간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젊은 소비층의 달라진 소비 방식이 있다. 제품을 소유하는 것뿐 아니라 어디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소비의 일부가 됐다. 방문자는 기업이 만든 공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다시 제작해 온라인에 퍼뜨린다.
 
기업 입장에서는 팝업 자체가 거대한 광고물이 된다. 현장에서 제품을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자발적인 게시물을 통해 광고비를 추가로 들이지 않고도 온라인 노출을 확대할 수 있다.
 
다만 공간을 화려하게 꾸민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와 관계없는 대형 조형물과 포토존만 설치하면 사진은 남아도 정작 제품은 기억되지 않을 수 있다. 유사한 연출이 반복될수록 팝업 간 차별성도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간 마케팅의 성패는 제품과 장소, 체험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되느냐에 달렸다”며 “소비자가 공간을 본 순간 어떤 브랜드의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비맥주 카스가 11일 서울 강남대로 420 역삼빌딩 1층에 ‘카스 FIFA 월드컵 팬 베이스캠프’를 열었다 사진은 행사장 전경 사진조재형 기자
오비맥주 카스가 11일 서울 강남대로 420 역삼빌딩 1층에 ‘카스 FIFA 월드컵 팬 베이스캠프’를 열었다. 사진은 행사장 전경 [사진=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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