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소현의 주주톡] "장부 좀 봅시다"…경영권 분쟁의 무기에서 주주 정보권으로

  • 데브시스터즈·코스맥스NBT 잇단 사례

  • 대표소송·손배소 증거 확보 수단 부상

  • 2022년 대법원 판결 이후 문턱 낮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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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행동주의가 한 단계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회계장부 열람권은 경영권 분쟁이나 행동주의 투자 과정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소액주주 플랫폼과 주주연대가 직접 행사에 나서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요.

주주들이 회사의 회계장부를 직접 들여다보며 경영 판단을 검증하려는 움직임입니다.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확인하려는 '정보권 행동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 같은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데브시스터즈입니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에서 결집률 5%를 넘긴 데브시스터즈 주주들은 지난 4월 29일 임시주주총회 소집 청구와 함께 회계장부 열람 등 상법상 보장된 주주권 행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신작 '쿠키런: 오븐스매시'의 흥행 부진과 주가 하락이 이어지자 투자 집행과 경영 의사결정이 적절했는지를 직접 확인하겠다는 취지였어요. 단순히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의 판단 근거를 검증하겠다는 점에서 기존 행동주의와 결이 달랐습니다.

앞서 지난 4월 코스맥스NBT의 사례에서는 회계장부 열람을 둔 다툼에서 법원이 소액주주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소액주주연합은 장기간 이어진 적자의 원인과 미국법인 투자 과정, 특수관계인 거래 등을 확인하기 위해 회계장부 열람을 신청했고 법원은 일부 열람·등사를 허용했습니다.

주주들은 미국법인이 수년간 대규모 적자를 내는 과정에서 자금이 어떻게 집행됐는지, 오너 일가가 참여한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확인한 뒤 필요하면 손해배상 청구 등 후속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회계장부 열람이 대표소송이나 경영진 책임 추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출발점이 된 셈입니다.

인피니트헬스케어 사례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올해 1월 헤이홀더를 중심으로 한 소액주주 10명은 오너 일가의 사익편취 의혹과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이유로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와 협의 과정 등을 거쳐 6월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장부열람 청구 자체가 회사와 주주 간 협상 카드로 활용된 셈입니다. 

회계장부 열람권은 새로운 제도가 아닙니다. 상법 제466조는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소수주주에게 회계장부와 회계서류를 열람·등사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대표소송이나 이사 해임청구, 이사의 위법행위 유지청구 등 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라는 취지입니다. 다만 회사는 주주의 청구 목적이 부당하다는 점을 입증하면 열람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회계장부 열람권이 자주 활용됐습니다. 2015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당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회계장부 열람·등사를 신청했고, 최근 영풍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도 활용됐습니다.

최근 사례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활용 목적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영권 확보보다는 투자 실패 원인과 자금 집행 과정, 계열사 거래 등을 검증하고 향후 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증거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강해지고 있어요. 

이 같은 흐름에는 2022년 대법원 판결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대법원은 주주가 회계장부 열람을 청구할 때 행사 경위와 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충분하며, 그 이유를 뒷받침하는 자료까지 첨부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의혹을 입증할 증거를 먼저 확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장부를 보려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된다는 취지입니다. 또 회사가 열람을 거부하려면 주주의 목적이 부당하다는 점을 회사 측이 입증해야 한다는 법리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행동주의의 초점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요구를 넘어 회사의 경영 판단과 자금 집행을 직접 검증하는 단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회계장부 열람권은 더 이상 경영권 분쟁에서만 등장하는 법률 수단이 아니라 일반 주주들도 적극 활용하는 정보권 행사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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