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후폭풍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당초 서울 일부 지역의 문제로 알려졌던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전국 140개 투표소로 확대됐다. 여기에 충북 청주의 한 투표소에서는 선거인명부 1300명 가까이가 누락된 사실까지 뒤늦게 드러났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의혹과 논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습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다를 수 있다. 승자와 패자의 입장이 엇갈릴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투표소에 간 유권자가 투표용지 부족 때문에 기다리거나 선거인명부 누락으로 참정권 행사에 차질을 겪는 일만큼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 문제다. 특히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치부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서울 14개 투표소의 문제로 알려졌다. 이후 67개 투표소로 늘어났고 다시 140개 투표소로 확대됐다. 선관위 발표가 나올 때마다 규모가 커지는 상황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선거 관리 기관이 논란을 해소하기는커녕 의문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투표용지 부족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예측이 어려운 돌발 상황도 아니다. 선거인 수와 투표율 추이는 사전에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더욱이 사전투표 열기가 높았던 이번 선거에서 본투표 참여 규모를 보수적으로 계산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선거를 준비하는 기관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이 투표용지 수급인데, 그 기본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면 관리 실패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청주에서 발생한 선거인명부 누락 문제는 더 심각하다. 투표용지가 부족한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추가 공급을 통해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인명부 자체가 누락됐다면 유권자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지 못한다. 선거인명부는 선거의 가장 기초적인 행정 자료다. 그 명부가 대규모로 누락됐다는 사실은 선관위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고 자체보다 사고 이후의 대응이다. 국민은 완벽한 조직을 기대하지 않는다. 어떤 기관도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가 발생했을 때는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며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공공기관의 기본 자세다.
하지만 선관위는 재선거 사유가 아니라는 법적 판단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현행법상 재선거 여부는 법률과 판례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그러나 법률적 판단 이전에 국민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선관위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재선거 가능성을 둘러싼 정치 공방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왜 발생했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이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의 구조적 문제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선거 때마다 각종 논란이 반복되고 있지만 정작 책임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비상임·겸임 체제인 선관위원장 제도가 적절한지, 상임위원 중심인 운영 구조가 실제로 책임 행정을 구현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절차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이 아니다. 국민이 선거 결과를 믿을 수 있느냐다. 투표용지가 부족하고 선거인명부가 누락됐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선관위는 지금 법률 조항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라는 본연의 책무 앞에 서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선거 결과가 아니라 선거를 믿지 못하는 순간 시작된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위대가 5일 개표소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개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