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 화천군수 당선…배우자 한영숙 "표 차이만 줄여도 성공이라 생각"

  • 김세훈 당선인 배우자 한영숙 인터뷰

김세훈 화천군수 당선인이 지난 3일 밤 당선 확정 후 군수직이라는 영광보다 함께 버텨온 아내에게 “고생 많았다”는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고 있다 김 당선인이 아내를 바라보는 모습은 단순한 승리의 기쁨이 아닌 긴 시간 곁을 지켜준 동반자에 대한 깊은 고마움과 애틋함이 담겨 있는 감사의 표현으로 읽혔다사진박종석 기자
김세훈 화천군수 당선인이 지난 3일 밤 당선 확정 후 군수직이라는 영광보다 함께 버텨온 아내에게 “고생 많았다”는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고 있다. 김 당선인이 아내를 바라보는 모습은 단순한 승리의 기쁨이 아닌, 긴 시간 곁을 지켜준 동반자에 대한 깊은 고마움과 애틋함이 담겨 있는 감사의 표현으로 읽혔다.[사진=박종석 기자]

 
“표 차이만 줄여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더불어민주당 김세훈 화천군수 당선인의 배우자 한영숙씨가 보수 강세 지역에서 세 번의 도전 끝에 얻은 승리의 순간과 그 뒤에 숨겨진 가족의 눈물, 그리고 군민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털어놨다.
 
“시장에 서 있으면 어르신들이 와서 ‘빨갱이가 왜 여기 서 있냐’고 했어요”
 
개표가 진행되던 지난 3일 밤, 한영숙씨는 웃으며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첫 번째 선거도, 두 번째 선거도 쉽지 않았다. 민주당 후보에게 화천은 높은 벽이었다. 거리 유세를 하면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았다.
 
“저는 파란당인데요” 그는 농담처럼 받아쳤다. 그러면 옆에 있던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오히려 미안하다며 사과를 건네기도 했다.
 
한씨는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가장 힘들었던 선거는 두 번째 도전이었다.
 
선거 전 여론조사 결과는 암울했다. 상대 후보와 큰 격차가 났다. “집에 들어가 보니 남편이 말없이 누워 있더라고요”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길 선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게 아니었잖아요. 그래도 표 차이는 줄여보자고 했어요”
 
부부는 다시 거리로 나갔다. 당시 대선 결과도 영향을 줬다. “이재명 대통령이 처음 대선에서 패배했을 때 우리도 약속했어요. 대통령 선거도 안 되는데 군수 선거는 더 어렵다. 그러면 안 나가자고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민주당 후보로 나설 사람이 없었다. 결국 김세훈 후보는 다시 출마를 결심했다. “고향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어요. 화천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죠”
 
세 번째 도전에서 처음으로 변화가 느껴졌다. 주민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농사 도와준 이야기, 인삼밭 일손 도와준 이야기, 어려울 때 찾아와 준 이야기를 어르신들이 먼저 하셨어요”
 
낙선 이후에도 김 후보는 쉬지 않았다. 행사장으로 달려갔고 주민이 부르면 어디든 갔다. “농사짓는 분들도 쉬는 시간이 있는데 우리 후보는 쉬는 날이 없었어요. 오늘 부르면 오늘 가고 내일 부르면 내일 갔어요”
 
한씨는 이번 선거 결과가 그 시간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봉사가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거 과정에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도 있었다. 지난 1월 친정어머니상을 치른 뒤였다. 원불교 신도들의 도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했다. 답은 단호했다. “음료수 하나도 안 됩니다”
 
그는 규정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정기 모임에서 자신의 차례가 돼 평소처럼 커피값을 계산했다. 그 장면이 영상으로 찍혔고 외부로 알려졌다. “남편 출판기념회가 정말 잘 끝난 날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밤 그 이야기를 들었죠”
 
충격은 컸다. “20일 동안 잠을 못 잤어요. 밥도 못 먹었고요. 내가 남편 앞길을 막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때 김 후보가 건넨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네가 무너지면 군수가 무슨 소용이냐”
 
한씨는 “남편은 늘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해결하려 했다”며 “누구를 탓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던 시각, 개표 결과는 김 후보의 우세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한씨는 끝까지 조심스러웠다. “아직 실감이 안 나요. 끝까지 가봐야 알 것 같아요”
 
잠시 말을 멈춘 그는 군민들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저는 남편 이야기보다 군민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번 결과는 결국 군민들께서 만들어주신 거잖아요”
 
장날마다 손을 잡아주던 어르신들, 차창을 내리고 응원해주던 주민들, 조용히 다가와 격려해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 응원들이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이어 “부족한 점도 많았는데 믿어주신 군민들께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의 화천 사랑은 가족들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였다. 아들이 춘천고에 진학했을 때도 가족은 화천을 떠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춘천에 집을 얻으라고 했지만 남편은 안 된다고 했어요. 화천을 지켜야 한다고 했죠”
 
주말이면 부부는 화천 곳곳을 돌아다녔다. 딴산, 안평리, 산골마을. 그때마다 김 후보는 같은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 이런 걸 하면 어떨까. 저기는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한씨는 웃으며 말했다. “가끔은 서울 구경도 시켜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늘 화천 이야기만 했어요”
 
군수 출마는 갑작스러운 결정도 아니었다. 공직 생활 때부터 김 후보는 언젠가 군수가 되면 화천을 위해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가족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퇴직하면 군수에 나갈 사람이라는 걸 다 알고 있었어요. 반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죠”
 
긴 시간의 도전 끝에 찾아온 승리의 밤. 한씨는 마지막으로 남편과 군민들에 대한 마음을 함께 전했다. “저희는 중학교 동창이에요.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남편을 만나 행복했어요”
 
잠시 미소를 지은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존경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함께 온 것 같고요”
 
그리고 끝내 울먹였다. “남편이 화천을 사랑하는 마음을 군민들께서 알아주신 것 같아요. 저희 가족이 잘해서가 아니라 군민들께서 믿어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은 당선보다도 군민들께 감사한 날입니다”
 
개표 방송 화면을 바라보던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눈물에는 세 번의 도전과 두 번의 낙선, 가족의 인내,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열어준 화천 군민들에 대한 고마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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