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양'영'화] "1989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청춘들"…영화 '여름궁전'

  • '반항아 감독' 러우예 감독 2006년작

  • 톈안먼 사태 다뤄…중국 상영 금지

  • 1989년 청춘 세대의 혼란과 상실감

  • "6·4 사태는 사랑하는 행위와 닮아"

영화 여름궁전
영화 '여름궁전'

올해로 톈안먼(天安門) 사태 37주년을 맞았다. 1989년 6월 4일 중국 정부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인권단체들은 당시 수천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도 이 사건을 정식 명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대신 "1980년대 말 발생한 정치적 풍파" 정도로만 언급할 뿐이다.

매년 6월 4일이 다가오면 중국 내 온라인 검열은 더욱 강화된다. '六四(6·4)'나 '톈안먼' 같은 단어는 물론, 관련 사진과 영상, 음악도 검열 대상이 된다. 올해도 '89', '64', '탱크' 등의 단어가 포함된 게시물이 집중적으로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위챗 송금 시 64위안 입력이 제한되거나, 미국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1989'를 위챗 모멘트에 공유할 수 없다는 경험담을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 사회에서 6·4는 여전히 금기다. 때문에 톈안먼 사태를 정면으로 다룬 중국 영화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러우화 감독의 2006년작 '여름궁전(원제, 頤和園 이화원)'이다.

영화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전후 정치적으로 격변하는 불안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학생 세대의 사랑과 방황, 일탈과 상처를 담아냈다.

영화는 북중 접경 도시인 옌볜자치주 투먼에서 주인공 위훙이 베이칭대(베이징대와 칭화대를 합친 가상 대학) 입학통지서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시골 출신으로 베이징에 올라온 그는 기숙사 혼숙, 자유로운 흡연과 성문화 등 청춘 세대의 일탈 행위에 새로운 문화 충격을 받는다. 이곳에서 위훙은 저우웨이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베이징 대학가에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면서 두 남녀의 관계도 질투와 배신, 불안과 집착이 뒤엉킨 애증의 관계로 변해간다. 이후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베이징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다. 하지만 1989년의 기억은 끝내 그들을 놓아주지 않고, 삶은 더 짙은 음울함으로 치닫게 된다.

영화의 원제는 이화원이다. 이화원은 청나라 말기 서태후의 여름 별궁으로, 제국의 영광과 쇠락이 공존하는 장소다. 영화 속에서 위훙과 저우웨이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곳도 이화원 호수다. 러우예 감독은 "주인공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이화원에서 배를 타는 장면"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화원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읽히는 이유다. 한때 존재했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사랑과 연애의 무대, 사라진 청춘의 낙원을 의미하는 곳인 셈이다.

러우예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1989년 당시 학생들과 정부의 관계를 "한 차례 사랑을 나누는 행위와 같았다"고 비유했다.

양측의 관계는 결국 고통스럽고 불편한 결말을 맞았고, 정부는 학생들에게 '뺨을 때렸다'. 군대를 동원한 무력 진압을 의미한다. 감독은 "너무 세게 때려서 뺨에서 피가 날 정도였다"며 "정부도 그것이 지나쳤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후 10년 동안 고속 경제 발전을 통해 이를 만회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6·4 사태는 사랑과 연애와 매우 닮았다"고 전했다.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남긴 상처가 이후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베이징을 떠난 뒤에도 끝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영화에 '톈안먼 사태'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간중간 학생들에 대한 군부의 탄압과 발포 장면이 포함됐고, 톈안먼 사태 당시 학생들이 플래카드를 흔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찍은 실제 영상이 삽입돼 톈안먼 사태의 참혹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당시 중국 당국의 심사 허가를 거치지 않은 채 칸 영화제에도 출품돼 해외에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영화는 중국 내에서 상영이 금지됐고, 러우 감독은 당국으로부터 5년 간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았다.

영화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았다. 특히 남녀 배우의 전신 노출 장면과 수위 높은 베드신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반면 영화계에선 1989년 전후 중국 청년 세대의 혼란과 상실감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정훈 서울대 중문과 교수는 영화 '여름궁전'과 관련한 논문에서 "영화 속 성행위는 주인공들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존재 증명의 의식이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격정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또 "주인공들은 한때 시대가 청년에게 부여한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그 결과 긴 상처와 방황의 후일담을 살아가게 됐다"며 "영화를 해석하는 과정은 6·4 전후에 정신적으로 멈춰 선 인물들이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내면에 남은 상처(트라우마)를 되짚어 보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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