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오일쇼크에 웃은 일본차, 이번 오일쇼크엔 中 전기차에 밀려

  • 중동 위기 후 37개국 EV 월판매 사상 최대

  • 저가 中전기차 공세에 일본차 전략 부담

지난달 25일 중국 항저우에 있는 국제자동차무역항에 수출용 중국산 전기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사진AFP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중국 항저우에 있는 국제자동차무역항에 수출용 중국산 전기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사진=AFP·연합뉴스]



중동 위기 이후 연료 가격이 뛰면서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EV) 전환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연비 좋은 일본차의 세계 확산을 불렀다면, 이번 에너지 충격은 저가 EV를 앞세운 중국차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2일 S&P글로벌모빌리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3월과 4월 중 37개국에서 EV 월간 판매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신차 판매에서 EV가 차지하는 비율이 10%를 넘은 국가는 38개국으로 늘었다. EV 보급 확대의 분기점으로 여겨지는 16%를 넘은 나라도 28개국에 달했다.

그동안 EV 판매는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 등 각국 정책에 크게 좌우됐다. 중국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EV 가격이 휘발유차보다 비싸고, 충전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원유 가격이 급등하고 휘발유 가격 상승과 공급 불안이 확산하면서, 유지비가 싼 EV에 눈을 돌리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3월에는 호주와 영국 등 28개국, 4월에는 브라질과 필리핀 등 9개국에서 EV 월간 판매량이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3~4월 모두 전체 조사 대상국의 91%에서 EV 판매가 전년 같은 달보다 늘었다. EV 판매 증가국 비율이 90%를 넘은 것은 2023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는 3~4월 EV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2.4배인 8만대로 늘었다. 신차 판매에서 EV가 차지하는 비율도 14%포인트 오른 26%로 높아졌다. 동남아시아에서는 EV 판매가 40% 증가한 9만대를 기록했고, 점유율은 16%가 됐다. 유럽연합(EU)도 한때의 정체에서 벗어나 EV 판매가 40% 늘었다.

다만 세계 전체로 보면 증가세는 제한적이었다. 중국의 3~4월 EV 판매는 133만대로 전년 동기보다 8% 줄었다. 올해 1월부터 EV 세금 감면 조치가 축소된 영향이다. 미국도 지난해 9월 EV 보조금이 종료된 여파로 판매가 20% 감소했다. 미·중 두 거대 시장의 부진으로 세계 전체 EV 판매 증가율은 8%에 그쳤다.

그러나 미·중을 제외하면 흐름은 다르다. 닛케이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을 뺀 148개국의 EV 판매는 50% 증가했고, 신차 판매 내 EV 비율도 12%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그동안 보조금과 규제가 이끌던 EV 시장이 중동 위기를 계기로 유지비를 따지는 소비자 선택에 좌우되는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본에서도 휘발유 가격이 보조금으로 억제돼 있는데도 3~4월 EV 판매가 50% 늘었다. 다만 신차 판매 내 EV 비율은 2%에 그쳐 주요 시장보다 보급 속도가 더디다.

일본 업체에는 이번 변화가 부담이 될 수 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는 연비 좋은 소형차를 앞세운 일본차가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넓혔지만, 이번에는 저가 EV를 앞세운 중국 업체들이 유가 상승의 수혜를 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 자동차업계 단체에 따르면 4월 중국의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70% 늘어난 90만대였다. 이 가운데 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V) 등 신에너지차 수출은 2.1배 증가한 43만대로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유럽·중국 이외 시장에서 판매된 EV와 PHV의 55%는 중국에서 수입된 차량이었다.

특히 원유의 중동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시아에서는 중국산 저가 EV가 일본차의 기존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일본 업체들은 그동안 하이브리드차를 앞세워 EV 전환 속도를 조절해 왔지만, 유가 상승으로 소비자 선택이 바뀌고 중국차가 가격을 앞세워 신흥시장을 파고들면서 전략 수정 압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 EV 수요 둔화로 혼다 등 자동차 업체들이 관련 손실을 반영하는 등 전기차 사업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크다. 그럼에도 세계 EV 시장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면서 지역별 수요 변화에 맞춘 일본 업체들의 전략 조정도 불가피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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