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가 출시 5일 만에 6000억원 전량 판매를 기록했다. 가입자 수는 3만 명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약 39%는 연소득 기준 서민층으로 집계됐다. 1인당 평균 가입금액도 2000만원 수준에 달했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적지 않은 국민이 성장펀드에 자금을 맡겼다는 사실은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투자자들의 선택이다. 최근 수년간 시중 자금은 부동산과 예금, 단기 금융상품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미래 산업에 투자하기보다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성장펀드 흥행은 적어도 일부 자금이 다시 생산적 투자로 이동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경제성장의 원천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래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다.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고, 기술이 개발되며, 혁신 산업이 성장해야 일자리와 소득도 늘어난다. 자금이 부동산과 단기 금융상품에만 머물면 경제 전체의 성장 잠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국민의 자산을 생산적 투자와 연결하는 다양한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 가계 자산의 상당 부분은 연금과 뮤추얼펀드, ETF 등을 통해 기업과 자본시장에 투자된다. 미국의 대표적 퇴직연금 제도인 401(k)는 수십 년 동안 혁신기업 성장의 중요한 자금 공급원 역할을 해왔다. 미국 가계가 보유한 자산이 결국 애플과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의 성장으로 연결된 것이다.
일본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장기간 예금에 머물러 있던 가계 금융자산을 자본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NISA(소액투자 비과세 제도)를 확대했다. 이른바 '저축에서 투자로' 정책이다. 과거 일본 가계 자산의 절반 이상이 현금과 예금에 묶여 있었지만 최근에는 주식과 펀드 투자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싱가포르 역시 국부펀드와 연금제도를 통해 국가와 국민의 자산을 장기 투자에 활용하고 있다. 단기 수익보다 국가 경쟁력과 미래 산업 육성을 중시하는 접근법이다.
한국 역시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 금융자산은 여전히 예금과 부동산 비중이 높다. 물론 안정적인 자산 보유는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미래 산업에 투자할 장기 자금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우주산업, 에너지 전환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은 대규모 자본 투입 없이는 성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흥행만으로 성공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과거에도 정책 목적을 가진 각종 펀드가 출범 초기에는 관심을 받았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투자 대상 선정이 부실하거나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경우 결국 수익률 악화로 이어졌다. 투자 실패는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자본시장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무엇보다 성장펀드는 정책금융이 아니라 투자상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투자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수익이 나면 이익을 얻지만 손실 가능성도 존재한다. 정부가 사실상 원금을 보장하는 것처럼 인식되거나 정치적 성과 사업으로 활용된다면 시장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도 중요하다. 투자 판단은 정치가 아니라 시장 논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지원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장 가능성과 수익성을 기준으로 자금이 배분될 때 펀드도 성공하고 산업도 성장할 수 있다.
투명성 역시 필수적이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돈이 어디에 투자되고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자산운용보고서 공개와 정보 제공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장치다.
성장펀드는 단순히 6000억원을 모으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자산을 미래 산업과 연결하고, 시중 자금을 생산적 투자로 유도하는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만드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혁신을 "새로운 결합"이라고 정의했다. 성장펀드 역시 국민의 자금과 기업의 혁신을 연결하는 새로운 결합이 돼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는 수익을 얻고 기업은 성장하며 국가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완판은 출발일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운용하느냐다. 성장펀드가 단기 흥행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새로운 성공 모델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시중 자금이 생산적 투자로 흘러가고, 그 결실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경제에 가장 필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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