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세계 에너지 비상경보…한국 경제, 최악 시나리오까지 대비해야

중동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가 세계 경제를 다시 거대한 불확실성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76개국이 경제 비상조치에 돌입했다. 불과 석 달 전 55개국이던 것이 급증했다. 단순한 국제 유가 상승 국면이 아니다. 세계 경제의 혈관인 에너지 공급망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한 상황은 심상치 않다. 글로벌 원유 소비량이 생산량보다 하루 최대 600만~900만 배럴 많아지는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고, 부족분은 비축유와 재고 감소로 버티는 구조다. 그러나 이마저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글로벌 원유 재고는 전쟁 이후 3억8000만 배럴 감소했다. JP모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재고가 이르면 다음 달 ‘운영상 스트레스 수준’에 접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시장 심리다. 애버딘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180달러까지 치솟는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 역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세계 경기 침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전망 차원이 아니다. 이미 세계 경제는 에너지 공급 부족 상태에서 재고를 깎아가며 버티는 구조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한국은 세계 주요국 가운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온다. 특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다. 이곳이 막히거나 불안정해질 경우 가장 직접적인 충격을 받는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다.
 
이미 징후는 나타나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은 단순히 주유소 기름값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물류비와 항공운임, 제조원가, 전기요금, 도시가스요금까지 연쇄적으로 밀어 올린다. 결국 기업 수익성이 악화되고 소비가 위축되며 물가가 다시 불안해진다. 특히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중심 경제는 에너지 가격 급등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등 주력 산업 대부분이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지금 세계 경제가 이미 고금리와 지정학 리스크, 공급망 재편 부담 속에서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글로벌 보호무역 강화까지 겹친 상황에서 에너지 충격까지 더해질 경우 충격파는 예상보다 훨씬 클 수 있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세계 경제 질서를 바꿨듯이 이번 위기 역시 산업 구조와 국제 질서를 다시 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의 위기의식은 둔감하다. 아직도 국제 유가를 단순한 시장 변수 정도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하지만 지금은 평시 대응으로 버틸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를 국가 생존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대응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비축유 확대와 수입처 다변화는 물론이고 산업별 비상 대응 체계까지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력 수급과 물류망 안정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위기는 늘 경제 위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경제 위기는 결국 국민 생활을 흔든다. 지금 세계는 이미 비상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도 더 이상 낙관론에 기대어 시간을 흘려보낼 상황이 아니다. “빌린 시간 위에 살고 있다”는 경고를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위기는 언제나 준비하지 못한 나라부터 먼저 덮친다.

 
국제유가가 급등한 5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제유가가 급등한 5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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