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에 마침내 '감사의 정원'이 문을 열었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위해 피를 흘린 유엔군 22개국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23개의 돌기둥이 광장 한복판에 우뚝 섰다. 높이 6.25m. 숫자 하나에도 전쟁의 기억을 새겼다.
낮에는 국기가 펄럭이고, 밤이면 조명이 켜진다.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이 공간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는 당신들의 희생을 잊지 않았습니다"라고 세계를 향해 말하는 국가적 인사다.
우리는 너무 오래잊고 살았다. 오늘 대한민국은 그냥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1950년 여름, 나라가 무너지고 서울이 함락되고 부산까지 밀리던 풍전등화의 순간, 이름도 낯선 나라의 젊은이들이 한반도로 왔다. 미국,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에티오피아, 그리스…. 그들은 자기 조국도 아닌 땅에서 죽어갔다. 그리고 그 희생 위에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이 세워졌다.
세계 어느 나라든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은 존재한다. 미국의 워싱턴DC에 가면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이 있고, 유럽 곳곳에도 전쟁 추모공원이 있다. 그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문명국가의 기본 예의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공간 하나 만드는 일조차 정치 논란이 된다. 감사의 정원 역시 그랬다. 사업 초기부터 일부 진보 진영과 민주당 인사들은 "광장 정치다", "국수주의다", "과도한 국가주의다"라는 식의 비판을 쏟아냈다. 심지어 당시 김민석 총리까지 공사 현장을 찾아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중앙정부의 고위 인사가 지방정부의 역사 기념 사업 현장에 직접 나와 제동을 거는 모습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물론 정책은 비판할 수 있다. 예산과 디자인, 광장 활용 방식에 대한 토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6·25 참전국 용사들을 기리는 공간 자체를 불편해 하는 정서는 국민 다수의 상식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진보도 존재하고 보수도 존재한다. 친북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강경 반북 노선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데 기여한 외국 참전 용사들에 대한 감사 만큼은 이념을 넘어선 문제라는 점이다.
감사의 정원은 '반공 조형물'이 아니다. 누군가를 적대하기 위한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전쟁의 참혹함과 자유의 소중함을 동시에 기억하자는 공간이다. 네덜란드가 보낸 석재에 새겨진 '평화를 위한 희생'이라는 문구가 그 본질을 보여준다. 독일이 베를린 장벽 일부를 보내온 것도 마찬가지다. 자유를 잃어본 국가들은 자유의 가치를 안다.
이번 사업이 의미 있는 이유는 또 있다. 오세훈 시장이 스스로 말하듯 중도 보수의 철학이 이 공간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보수라고 해서 과거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 진보라고 해서 국가 상징을 불편해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건강한 중도 보수는 국가의 정체성과 국제적 연대를 동시에 존중한다. 감사의 정원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애국주의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국가의 역사와 희생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더 주목할 부분은 오 시장이 처음 추진했던 100m 태극기 구상을 시민 비판 이후 수정했다는 점이다. 그는 방향은 유지하되 방식은 바꿨다. 결국 시민 공모와 의견 수렴을 거쳐 지금의 '감사의 정원'으로 완성됐다. 이것은 일방통행식 행정이 아니라 조정과 설득의 과정이었다.
광화문은 조선의 심장이었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광장이었으며, 동시에 세계가 서울을 바라보는 얼굴이다. 그곳에 6·25 참전국을 기리는 공간이 들어선 것은 대한민국이 이제 전쟁의 폐허를 넘어 세계 시민국가로 성장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언젠가 외국 관광객과 젊은 세대들이 그 23개의 기둥 사이를 걸으며 묻게 될 것이다. "왜 이 나라 사람들은 이 공간을 만들었나요?" 그 질문에 대한민국은 이렇게 답해야 한다. "우리는 도움받았던 역사를 잊지 않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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