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ABC 리더에게 묻는다 –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현장에 답이 있다…산업 경쟁력은 실행에서 나온다"

한국 경제 정책의 흐름을 관통해온 인물을 꼽으라면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빼놓기 어렵다. 경제기획과 산업정책, 통상과 에너지, 그리고 저출산·고령화 대응까지 국가 핵심 어젠다를 모두 경험한 드문 정책가다. 그는 ‘보고서의 달인’ ‘아이디어 뱅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치밀한 정책 설계와 강력한 실행력으로 평가받아 왔다.

지금 한국은 AI 전환, 인구 구조 변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세 가지 거대한 흐름이 동시에 몰려오는 ‘복합 전환기’에 서 있다. 이 시점에서 국가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주 전 장관은 “이제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속도”라며 과거의 확장형 성장 모델을 과감히 버리고 기술 중심의 압축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진단은 단순한 정책 조언을 넘어 한국 경제 구조의 근본적 재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사진연합뉴스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사진=연합뉴스]


 공직에 입문하시며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원칙은 무엇입니까.
= 저는 두 가지 원칙을 늘 마음에 두고 공직 생활을 했습니다. 첫째는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지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삶의 질과 기회의 측면에서 다음 세대가 더 나은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둘째는 ‘지금 이 자리가 꽃자리다’라는 자세입니다. 어떤 자리든 최선을 다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특히 저처럼 평범한 출발을 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태도였습니다. 결국 공직은 결과로 평가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반드시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공직 경험 속에서 한국 경제 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 가장 큰 변화는 정부의 역할이 ‘주도자’에서 ‘조력자’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과 제도로 경제를 이끌었다면, 지금은 민간과 정치의 역할이 훨씬 커졌습니다. 정부는 이제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는 파트너, 즉 ‘에너블러(enabler)’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한편으로는 정책의 일관성과 장기적 예측 가능성이 약화되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경제 정책은 단기적 인기보다 장기적 안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정책 설계 공무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입니까.
= 한마디로 ‘실력’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성, 창의성, 균형감각, 그리고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정책은 아이디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행으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습니다. 정부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창의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대안을 만들어내고 이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관 재임 시 수출을 반등시킨 핵심 전략은 무엇이었습니까.
=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출 기업들이 겪는 애로를 직접 듣고 즉각 대응했습니다. 동시에 구조적인 변화를 추진했습니다. 수출 품목을 기존의 10대 품목 중심에서 벗어나 EV, 배터리, 바이오, 방산, 소비재 등으로 다양화했고, 시장도 중동·동남아·남미로 확대했습니다. 또한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를 활용해 수출 방식을 혁신했습니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심리를 바꾼 것이 중요했습니다. ‘다시 해보자’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었습니다.


 정책과 현장의 연결은 어떻게 이뤄져야 합니까.
= 저는 항상 ‘답은 현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상 위 보고서는 제한된 정보만 제공합니다. 하지만 현장에 가면 문제의 본질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장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에 반드시 피드백을 주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정책 신뢰가 생기고 집행력도 높아집니다. 정책은 현장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정책이 됩니다.


 앞으로 산업 경쟁력은 어디서 나와야 합니까.
= 핵심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과거처럼 문어발식 확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비핵심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자원을 집중해야 합니다. 삼성과 한화의 빅딜 사례처럼 산업 구조를 재편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글로벌 전문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재편될 필요가 있습니다.


 AI 시대 산업 구조 변화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 AI가 모든 산업을 재편할 것입니다. AI 자체 산업뿐 아니라 기존 산업도 AI 기반으로 전면 혁신됩니다. 반도체, 에너지, 모빌리티, 바이오 등 모든 분야에서 AI가 핵심 요소가 됩니다. 한국은 플랫폼 산업 기반이 있기 때문에 AI를 빠르게 접목하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규제, 인력, 에너지, 사회적 저항 문제를 해결해 AI 전환을 지원해야 합니다.

 글로벌 기술 경쟁 속 한국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 선택과 집중, 속도, 그리고 민관 협력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경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분야에 집중해야 합니다. 동시에 빠른 실행력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응용과 실행에서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극대화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TSMC나 ASML 같은 독보적 기업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출산 문제의 본질과 해법은 무엇입니까.
= 저출산은 단순한 인구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지금 추세가 지속되면 성장률 하락, 사회보장 붕괴, 지역 소멸 등 국가 전체가 위기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해결을 위해서는 일·가정 양립 정책을 강화하고, 유연근무 확대, 주거 지원, 이민 정책 등을 병행해야 합니다. 특히 정책의 타겟팅과 효율성이 중요합니다. 단순한 예산 확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향후 20년 한국의 가장 큰 도전은 무엇입니까.
= AI 전환과 인구 구조 변화, 그리고 기후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이 가장 큰 도전입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AI입니다. AI는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이를 활용하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대규모 실업 등 사회적 충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 시스템, 교육 체계, 복지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결국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시스템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제 전략가이자 정책 설계자다.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으며,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경제기획원에서 정책 커리어를 시작해 기획재정부 차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거치며 한국 경제 정책의 핵심을 담당했다.

그는 ‘보고서의 달인’, ‘아이디어 뱅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정책 설계 능력과 실행력을 동시에 갖춘 관료로 평가받는다. 산업부 장관 재임 시절에는 장기간 감소하던 수출을 반등시키는 성과를 이끌었고, 신산업 육성과 시장 다변화를 통해 수출 구조를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중동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며 한국 산업의 글로벌 확장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인구 구조 문제 해결에도 앞장섰다. 그는 단순한 정책 집행을 넘어 장기적 구조 개혁과 시스템 설계를 강조하는 전략가로 평가된다. 특히 ‘선택과 집중’, ‘현장 중심 정책’, ‘민관 협력’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현재 그는 AI 전환과 인구 변화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기술 중심의 산업 재편과 사회 시스템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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