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하천과 계곡에서 적발된 불법시설이 3만3000건을 넘었다. 처음 정부가 보고했던 835건과는 비교조차 어려운 규모다. 단순한 숫자의 차이가 아니다. 국가 행정이 현장을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해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절대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강도 높은 감찰과 직무유기 수사를 주문했다. “왜 언론이나 야당 의원들이 자료를 요구한 뒤에야 문제를 발견하느냐”는 질책도 나왔다. 하천·계곡 불법 점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름철마다 반복됐고, 지방자치단체와 관계 기관은 수년째 단속과 정비를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실제 드러난 규모는 정부 스스로 파악한 수치의 수십 배였다.
문제의 본질은 행정 신뢰의 붕괴다. 국민은 세금을 내고 국가 시스템이 최소한의 공정성과 질서를 유지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일부 지역에서는 불법 구조물이 버젓이 영업을 이어갔고, 행정기관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대통령 지적처럼 두 차례나 점검 기회가 있었는데도 누락됐다면 이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사실상 직무 방기에 가깝다.
특히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가 구조적으로 반복돼왔다는 점이다. 불법 시설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전기와 수도를 끌어오고 영업을 이어가려면 지역 행정과의 접점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묵인과 방치, 느슨한 단속이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일부는 철거 이후 다시 영업을 재개하고, 단속이 느슨해지면 원상복귀되는 일이 반복됐다. 결국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는 구조가 굳어진 셈이다.
이번 사안에서 대통령이 “국정의 신뢰 문제”라고 언급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국민이 국가를 신뢰하지 못하면 법 집행도 권위를 잃는다. “어차피 또 넘어갈 것”이라는 냉소가 퍼지는 순간 행정은 통치력이 아니라 피로감만 남긴다. 실제로 국민이 느끼는 분노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불법 시설 자체보다 “왜 그동안 아무도 손대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더 크다.
다만 강한 질책과 전면 감찰이 보여주기식 처벌로 흐르면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회성 호통 정치가 아니라 구조 개혁이다. 전국 하천과 계곡 관리 체계를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책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불법 점용 적발 이후 사후 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산불 복구 사업 과정에서 제기된 이른바 ‘산불 카르텔’ 문제 역시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은 페이퍼컴퍼니의 벌떼 입찰과 부실 업체 문제를 지적하며 입찰보증금 강화와 형사 제재 필요성을 언급했다. 공공사업과 보조금, 지역 개발 사업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부패를 더 이상 관행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행정의 무능과 방치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불법 시설은 안전사고 위험을 키우고, 환경 훼손을 남긴다. 부실 복구 사업은 세금을 낭비하고 재난 피해를 키운다. 그런데도 단속과 관리 책임이 흐려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국가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은 결국 평범한 시민들이다.
공권력은 선택적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지역 이해관계나 정치적 눈치,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법 집행이 흔들리는 순간 국가는 신뢰를 잃는다. 불법 시설 3만3000건은 단순한 행정 통계가 아니다. 오랫동안 누적된 무책임과 안일함의 숫자다.
정부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대대적 단속 이벤트로 끝내지 말아야 한다. 누가 왜 방치했는지, 어떤 구조적 허점이 있었는지 끝까지 밝혀야 한다. 동시에 전국 단위의 상시 감시 체계와 책임 행정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 다시 국가의 법 집행을 신뢰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윤호중 행안부 장관에게 질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