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좋은 수를 보여줄 수는 있어도, 그 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결국 인간의 몫입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인간의 영역이었던 바둑에 도전하며 세상은 급변했다. 인간을 넘어선 AI는 이제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바둑기사들의 기보를 학습하며 인간을 이해하려고 했던 AI는 이제 프로기사들이 절대 넘을 수 없지만 이해하고 배워야 할 상대가 되고 말았다. AI가 인간을 위협하는 상대가 아닌 미래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AI가 인간의 사고 영역까지 빠르게 확장하는 가운데, 바둑계 두 전설은 오히려 인간만의 '질문하는 힘'과 '판단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류 대표로 AI와 맞섰던 이세돌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임교수와 한 세대 앞서 한국 바둑계를 대표했던 '돌부처' 이창호 국수는 6일 울산광역시 UNIST 대학본부 대강당에서 열린 'UNIST 오픈스테이지(Open Stage) 1' 토크콘서트와 사전 기자간담회에서 AI 시대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두 기사는 AI를 단순한 '정답 제조기'로 보지 않았다. 이 교수는 알파고 제로의 사례를 들며 "인간의 데이터를 넘어 스스로 진화하는 AI 시대에는 이용을 넘어선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과거 우리가 '절대 두지 마라'고 배웠던 금기시 된 수들을 AI가 두는 것을 보며 우리가 교육과 관습에 갇힌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다"며 "AI가 던지는 메시지를 잘 포착하는 사람이 앞서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국수 역시 "처음엔 AI의 파격적인 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지금 보니 고정관념을 깨는 훌륭한 발상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다만 그는 AI에 대한 맹신을 경계했다. 이 국수는 "스스로 깊이 고민하다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질문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자기만의 기풍과 스타일을 확립한 상태에서 AI의 도움을 받아야 진정한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AI가 바둑계에 가져온 변화와 개인적 고충도 털어놨다. 그는 "AI와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 은퇴를 앞당긴 측면도 있다"며 "후배들이 겪을 고충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알파고와 대결 당시를 돌아보며 아쉬움도 드러냈다. 이 교수는 "다시 돌아가도 대결 제안은 수락하겠지만 준비는 철저히 할 것"이라며 "당시 전문가들의 조언을 등한시했던 점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특히 4국 승리 후 데미스 허사비스에게 'AI는 인간에 안될 것 같다'고 말한 자신의 대답이 경솔했다고 소회했다. 이 교수는 "어마어마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질문에 너무 생각 없이 답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며 "부끄러운 대답이었다"고 언급했다.
AI가 가져올 사회 변화에 대해서는 낙관과 경계를 동시에 내놨다. 이세돌 교수는 "변화 과정에서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인간만이 가진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생각의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AI 기술을 소수 권력이 독점하는 디스토피아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수는 AI 시대일수록 인간의 기본기가 중요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인문학적 소양이나 독서 등 기초가 탄탄해야 AI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진 토크콘서트에서 두 사람은 AI 시대 인간에게 필요한 역량에 대해 보다 깊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 기사는 AI를 단순한 승패의 문제가 아닌 해석의 영역으로 바라봤다. 두 기사는 AI가 더 많은 정답을 보여줄수록 중요한 것은 답 자체보다, 그것을 이해하고 자기 판단으로 연결하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AI가 강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 답을 보고 무엇을 다시 물을 수 있느냐"라며 "낯선 상황에서 자기 생각으로 선택을 내리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이 국수는 "정답을 보는 것과 그 정답에 이르는 길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며 "AI가 좋은 수를 알려줘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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