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에 관한 생각’의 뿌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책 한 권이 있다. <이재명의 서재(이채윤 지음, 다차원북스, 2025년 출간)>라는 책이다. ‘이재명을 만든 100권의 책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은 이 대통령이 읽은 책 중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100권을 추려 그의 국가론, 경제론, 법률론, 권력론, 인간론 등을 망라한 정치 철학을 설명한다.
저자는 “뉴스에 화가 나서 리모컨을 던지던 당신, 밤늦게 정치 유튜브를 보면서 중얼거리던 당신, ‘도대체 저 사람(이재명을 지칭)은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거야’라고 의문을 품은 당신의 그 의문 부스러기들을 이재명의 책장을 통해 하나씩 꺼내 본다”라고 서두에 썼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정치인 이재명’의 실체가 손에 잡히듯 다가온다. 동시에 그 한계와 문제점도 생각하게 된다.
왜 부동산 투기 근절에 집착할까
이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와이 전쟁’ 을 선언하고 진행 중이다. 부동산 투기를 ‘만악의 근원’이자 ‘불공정의 뿌리’로 규정하고 “세금, 금융, 규제 정상화를 통한 부동산 투기 제로를 구현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왜 이토록 부동산 투기 근절에 강한 집착을 보일까?
<이재명의 서재>는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의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21세기 자본>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소득이 어떻게 축적되고 분배되는지, 왜 불평등이 심화되는지를 방대한 데이터와 이론을 통해 분석한 책이다. 핵심은 “자본 수익률은 경제 성장률보다 높고, 그래서 부의 불평등과 세습이 구조적으로 심화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월급쟁이들의 연봉 상승률보다 아파트값 상승률이 더 높고, 그 결과 회사 열심히 다니면서 저축하는 사람과 아파트 여러 채를 사들이는 사람 사이의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재명의 서재>는 “이재명은 <21세기 자본>을 읽고 부의 집중이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설계된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전율했다”고 말한다. “오래 전부터 직감했던 ‘부자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현상의 수학적 증거이자, 명확한 답”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재명은 특히 피케티가 강조한 ‘세습 자본주의’ 즉 돈이 돈을 낳고 그 돈이 다시 정치와 문화를 장악하는 힘을 보며 한국 사회의 상황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고 느꼈다. 이를 제도적으로 해소하지 않으면 정의로운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비거주용 1주택자 양도세 장기 보유 특별 공제 등을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부의 집중을 가능하게 한 ‘시스템’으로 보고 이를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추경 예산을 통해 7조원 규모의 ‘고유가 피해 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13조원 규모의 민생 지원금을 지급한 바 있다. 이런 지원 정책은 이 대통령이 늘 강조하는 기본소득 정책의 하나다. 이 대통령은 기본소득, 기본주거, 기본금융, 기본교육, 기본의료 등 기본사회 5대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본소득 정책의 철학은?
<이재명의 서재>는 이 대통령에게 기본소득 철학을 심어준 대표적인 책으로 필립 반 파레이스가 쓴 <모두에게 실질적인 자유-기본소득에 대한 철학적 옹호>를 꼽았다. 이 책은 기본소득을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자유의 본질을 실현하는 가장 진보적인 수단임을 철학적으로 옹호한 책이다. 이 책은 자유를 형식적 자유와 실질적 자유로 나눈다. 형식적 자유는 ‘외부 간섭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서 ‘법적으로 보장된 자유’를 말한다. 실질적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경제적 기반이 갖춰져야 누릴 수 있다. 이 책은 ‘실질적 자유를 자유의 핵심이자 인간이 진정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이 책을 읽고서 “기본소득은 복지의 최종 형태이자 사람을 일에서 해방시켜 인간답게 사는 권리를 주는 제도”라는 철학을 깨닫게 됐다고 <이재명의 서재>는 설명한다. 기본소득이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시장 원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이 대통령은 “고신용자에게는 저(율)이자로 고액을 장기로 빌려주지만, 저신용자에게는 고리로 소액을 단기로 빌려줘 죽을 지경일 것”이라며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 영역 같다”고 말했다. 이 통령은 “똑같은 일을 하는데 고용이 안정된 사람은 더 많이 받고, 고용이 불안한 사람일수록 (임금을) 덜 준다”며 비정규직 처우 개선도 강조했다. “정규직으로 돼 있는 사람은 안정성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그러니까 비정규직은 불안정성에 대한 보상을 더해 같은 조건이면 보수를 더 많이 받는 게 상식이다”라고 했다.
"경제는 수학이 아니라 정치다"
저신용자에게는 대출 금리를 높게 하고 고신용자에게는 낮게 하는 게 시장 원리다. 저신용자는 대출을 못 갚을 위험이 크니 그만큼 대출의 문턱을 높인 것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한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서 정규직과 똑같은 보수를 받는 게 맞는다. 그러나 고용이 불안하니 보수를 더 많이 줘야 한다는 주장은 시장 원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재명의 서재>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라는 책을 통해 이 대통령의 경제관을 설명한다. 이 책은 시장의 자율성을 지키면 경제가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굴러갈 것이라는 주장을 시장 만능주의의 환상이라고 한다. 불평등이 단순히 도덕적 문제나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과 제도적 설계의 결과라고 본다. 법과 제도가 강자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어 부와 권력의 집중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를 ‘시장 근본주의’의 실패라고 부르면서 “시장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 없이는 공정하거나 효율적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이재명에게 시장에 대한 뿌리 깊은 회의를 심어줬고, 시장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이재명의 서재>는 말한다. ‘시장은 본능적으로 약자를 배제한다. 따라서 국가는 시장을 교정하고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철학을 굳히게 됐다고 한다.
<이재명의 서재>는 이 대통령이 경제나 시장 문제와 관련해 무척 좋아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한 ”경제학은 수학이 아니라 정치이며 윤리다”라는 말이다. 이 대통령이 제기한 ‘저신용자 고리 소액 대출’과 ‘비정규직 보수’ 문제는 단순한 경제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학은 수학이 아니라 정치이고 윤리’라는 측면에서 봐야 이해할 수 있다.
"정치의 언어의 전쟁"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국민의 80%가 설탕세 도입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언급한 뒤 "담배처럼 설탕 부담금으로 설탕 사용 억제, 그 부담금으로 지역·공공 의료 강화에 재투자 (하는 방안에 대해) 여러분 의견은 어떠냐"고 적었다. 여러 언론이 정부가 ‘설탕세’ 도입을 검토한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일반 재정에 사용되는 세금과 특정 용도를 위해 원인에 부과하는 부담금은 다른데도 '설탕세 시행 비난'은 여론 조작 가짜 뉴스"라고 비판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부담금’과 ‘세금’은 법적으로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그 둘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고 정확한 차이도 잘 모른다. 다만 부담금보다 세금이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언론은 이런 현실을 반영해 일반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세금’이라고 표현했다. 언론의 관행 상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여론 조작 가짜 뉴스’이자 ‘증세 프레임’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이재명의 서재>를 보면 이 대통령이 왜 그렇게 용어 선택에 민감한가를 알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정치에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한다. <1984>는 최고 지배자가 국민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다룬 소설이다. 전체주의적 지배 도구의 하나가 ‘새로운 언어’라는 기법이다. 새로운 언어란 기존 언어를 단순화하거나 왜곡시켜 생각 자체를 세뇌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 대통령은 이 책을 읽은 뒤 ‘정치는 언어의 전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이재명의 서재>는 말한다. 정치는 누가 언어의 주도권을 쥐느냐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1984>에서 언론의 프레임과 정치적 수사가 진실을 어떻게 가리는지를 배우고 “진짜 무서운 권력은 총이 아니라 말이다. 말을 장악하면 사람의 머릿속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늘 되새긴다고 한다.
사람들은 ‘설탕 부담금’보다 ‘설탕세’라는 표현에 더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설탕세는 곧 ‘증세’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대통령이 설탕세라는 표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사자의 냉혹함과 여우의 교활함'
이 대통령의 권력 의지와 기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이라고 한다. <이재명의 서재>는 “이재명에게 군주론은 ‘정치판 생존의 바이블’과도 같다”고 했다. 군주론을 통해 ‘정치는 사람의 본성과 권력의 작동 원리를 꿰뚫는 기술’이라는 통찰을 갖게 됐다고 한다. “특히 군주론에 나오는 '사자처럼 무섭고 여우처럼 교활하라’는 말을 인용하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두 얼굴의 리더십이 필요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정치 행태를 보면서 ‘사자와 여우’를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전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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