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이란전쟁, 5000년 역사의 허와 실

  • —호르무즈 해협과 실크로드, 제국의 기억과 '길목의 법'  

이란을 이해하려면 먼저 한 가지 선입견부터 버려야 한다. 이란은 스스로를 단순한 중동의 한 국가로 보지 않는다. 그들의 집단 기억 저변에는 “우리는 한때 세계를 잇는 길의 주인이었고, 다시 질서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제국 의식이 놓여 있다.

페르시아는 오랫동안 동양과 서양, 중국과 인도,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세계가 만나는 거대한 교차로였다. 이란 고원은 우연한 변방이 아니라 반드시 지나야 하는 문명의 문턱이었다. 그래서 이란의 국가 전략에는 영토의 단순한 확장보다 통로의 장악이라는 성격이 짙게 배어 있다. 그들이 지배하려 한 것은 땅 자체가 아니라 사람과 물자와 부가 흐르는 길이었다.
 
이 점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오늘의 호르무즈 해협이 왜 단순한 바닷길이 아니라 역사의 반복처럼 보이는지 분명해진다.

먼저 고대 엘람 문명은 이란 남서부 수사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도시 문명과 정치 질서를 구축했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와 접하면서도 독자적 문자와 종교, 정치 체계를 유지했던 엘람은 이 땅이 단순한 통과 지점이 아니라 독자적 문명권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아케메네스 제국이 등장하면서 페르시아는 비로소 ‘길을 통한 제국 통치’의 전범을 세운다. 키루스 대제의 관용과 통합, 다리우스 1세의 행정 개혁은 단순한 영토 확장에 머물지 않았다. 제국은 길을 만들고, 길을 지키고, 길을 통해 세금을 걷고, 길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

이 시기의 상징이 바로 ‘왕의 길’이다. 수사에서 소아시아까지 이어지는 이 거대한 도로망은 단순한 통행로가 아니라 제국의 혈관이었다. 역참과 숙박 시설, 보급 체계와 치안 유지 장치가 갖추어지면서, 왕의 길은 군사와 행정, 외교와 무역이 동시에 흐르는 통합 인프라가 되었다.
 
페르시아는 길을 열어주되 그것을 공짜로 풀어놓지 않았다. 안전을 제공하는 대신 통제를 행사했고, 이동의 효율을 보장하는 대신 질서를 독점했다. 오늘의 말로 옮기면, 물류 인프라와 보안, 통관 체계를 국가가 한 손에 쥐고 운영한 셈이다. 이 시기에 이미 페르시아는 ‘길을 쥔 자가 부를 쥔다’는 국가 전략의 본질을 체득했다.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에 이르면 이 전략은 더욱 정교해진다. 이 시기의 페르시아는 동쪽의 중국·인도와 서쪽의 로마·비잔틴을 잇는 실크로드의 게이트키퍼가 된다. 중요한 것은 페르시아가 모든 상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단은 중국에서 오고, 향료와 보석은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오며, 유리와 귀금속은 서쪽에서 왔다.

그러나 그 모든 상품은 페르시아를 거치며 가격이 다시 정해지고, 정보가 걸러지며, 외교적 의미가 덧씌워졌다. 실크로드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보와 가격, 외교와 군사적 압박이 동시에 작동하는 거대한 공급망이었고, 페르시아는 그 공급망의 중개자이자 통제자였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페르시아가 이미 오늘날의 공급망 차단 전술의 원형을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로마가 중국과 직접 거래하여 중간 이익을 없애려 할 때, 페르시아는 그 길을 막았다. 물리적으로 차단하기도 했고, 정보를 왜곡해 직거래 가능성을 흐리기도 했으며, 외교적 장벽을 세워 독점적 지위를 지키려 했다. 이는 단순한 통행세 징수의 수준을 넘어선다. 누가 누구와 만나고, 어느 상품이 어떤 가격에 이동하며, 전쟁 시 무엇이 막히고 무엇이 허용되는지를 페르시아가 결정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실크로드를 하나의 지정학적 플랫폼으로 만든 것이다. 로마와 갈등할 때 통로를 차단하거나 비용을 급등시키는 방식은, 오늘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거론하며 국제 시장을 흔드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이 대목에서 손자병법은 중요한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손자는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고 했다. 전쟁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일이므로 깊이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또 “兵者, 詭道也”라 하여 전쟁은 속임수라고 했다. 나아가 “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이라 했다. 최상은 상대의 계략을 꺾는 것이고, 그다음은 외교를 꺾는 것이며, 그다음이 군대를 치는 것이고, 가장 낮은 수준이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페르시아는 바로 이 원칙을 역사적으로 구현한 문명이었다. 정면충돌보다 통로와 교역, 정보와 외교를 통해 상대를 다루는 방식, 그것이 곧 페르시아식 전략의 핵심이었다.
 
이 흐름은 현대에도 이어진다. 오늘의 호르무즈 해협은 실크로드의 해상 버전이다. 세계 에너지 흐름의 핵심이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한다. 이란은 이 통로를 통해 대규모 전면전 없이도 세계 경제를 흔들 수 있다. 봉쇄 가능성만으로도 유가는 출렁이고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한다. 이는 과거 실크로드를 폐쇄하거나 통행 비용을 조정해 상대를 압박하던 전략의 반복이다.

다시 말해, 이란은 전쟁을 단순한 영토의 싸움이 아니라 통로의 싸움으로 이해한다. 적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적의 흐름을 쥐는 것이 더 큰 힘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역사 속에서 배웠고, 오늘도 그 방식으로 세계를 상대하고 있다.
 
이란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은 절제와 지구전에 있다. 노자의 '도덕경'은 “知足者富”라 하였다. 만족할 줄 아는 자가 부유하다는 뜻이다. 또 “大國者下流”라 하여 큰 나라는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큰 힘은 오히려 낮은 자리에서 모든 흐름을 받아들이는 데서 나온다는 뜻이다. 이란의 전략은 겉으로는 이 절제의 철학 위에 서 있다. 상대가 과잉으로 움직일수록 자신은 물러서며 시간을 확보한다. 여기에 손자의 “以逸待勞”가 겹친다. 편안한 상태로 피로한 적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란은 전면전을 피하면서 긴장을 유지하고,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린다. 단숨에 모든 것을 얻으려 하기보다 버티고 견디며 상대의 과잉을 소모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전략의 밑바닥에는 단순한 힘의 논리만이 아니라 ‘법의 논리’도 깔려 있다. 함무라비 법전은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무제한 복수를 허용하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응징의 범위를 제한하고, 보복을 비례와 규범 안에 묶어두려는 초기 법질서의 장치였다. 바로 이 점에서 함무라비 법전은 야만의 선언이 아니라 복수의 확장을 통제하는 질서의 선언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페르시아 역시 이 문명권과 깊이 맞닿으며 통로를 통한 질서 통제라는 원리를 발전시켰다. 길을 지배한다는 것은 단순한 경제 행위가 아니다. 누가 지나갈 수 있는지, 무엇이 허용되는지, 어떤 비용이 정당한지를 정하는 법적 권력이다. 길은 도로이면서 동시에 규칙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제국은 그 규칙을 통해 부를 얻고 안전을 보장하며 질서를 독점한다. 오늘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해 통과 통제나 통행 비용의 제도화를 시사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통로의 통제는 질서의 통제이며, 질서의 통제는 곧 권력이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이란을 반쯤만 이해한 셈이다. 이란 전략의 ‘실’은 분명하다. 그들은 여전히 길목 국가이며, 세계 경제의 핵심 통로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허’도 분명하다. 과거의 성공 경험이 오늘에도 거의 같은 효력을 낼 것이라고 보는 순간, 역사는 전략이 아니라 향수가 된다. 과거 실크로드 시대에는 대체 경로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는 다르다. 에너지 공급망은 다변화되고, 정보는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국제 질서는 다극화되어 있다. 오늘의 세계는 기술과 금융, 해상보험, 군사동맹, 국제 규범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구조다. 하나의 길목만 쥐고 모든 질서를 움직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란의 힘은 현실적이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이란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목 위에 서 있지만, 그 길목 하나만으로 현대 세계를 완전히 흔들 수는 없다. 여기에서 이란의 허와 실이 갈린다. 그들의 지정학은 유효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제국의 기억은 강력한 자원이지만, 현실의 제약을 무시하는 순간 그것은 전략이 아니라 환상이 된다.
 
그럼에도 이란이 단순한 생존 국가가 아니라 문명의 계승자로 자신을 이해한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엘람 문명의 뿌리, 아케메네스의 왕도, 파르티아와 사산의 실크로드, 사파비 왕조를 거치며 굳어진 시아파 정체성,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살아남은 페르시아어와 문화의 연속성은 이란이라는 국가의 내면을 이룬다. 이란은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선 나라이고, 정복당했으되 흡수되지 않은 나라이며, 외래 질서를 받아들이면서도 끝내 그것을 자기 문명의 문법으로 바꾸어온 나라다.
 
그래서 이란의 정치와 외교에는 언제나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정서가 흐른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란을 단지 현재의 정권이나 종교 체제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란의 외교에는 신정 체제의 계산만이 아니라 제국의 기억이 함께 작동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그들에게 단순한 안보 카드가 아니라 문명의 기억이 응축된 상징이다. 실크로드가 육상의 혈관이었다면, 호르무즈는 해상의 혈관이다. 과거에는 비단과 향료, 귀금속과 정보가 그 길을 따라 흘렀다면, 오늘은 원유와 가스, 물류와 자본, 보험과 국제정치가 이 바닷길을 따라 흐른다. 통로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리듬을 바꾼다는 사실은 시대가 달라져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란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페르시아가 로마와 중국의 직거래를 막으며 중개 이익을 독점하던 시대와, 오늘날 제재와 동맹, 정보 네트워크가 촘촘히 얽힌 시대는 다르다. 이란이 과거의 제국적 기억을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 현대 세계를 온전히 움직일 수는 없다. 그 기억이 현실 감각과 결합할 때는 힘이 되지만, 현실의 제약을 무시할 때는 오히려 자기를 속이는 신화가 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중동의 긴장은 곧 에너지 가격과 산업 비용, 민생 부담으로 이어진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 한국 경제의 비용 구조를 흔들고 공급망 전체에 파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이란을 서방의 프레임만으로 단순화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이란의 자기 논리만을 따라 낭만화해서도 안 된다. 이란의 역사적 전략을 이해하되, 그 한계를 동시에 읽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인 시각이다.
 
결국 이란 전쟁의 본질은 하나로 수렴된다. 과거와 현재의 충돌이다. 제국의 기억과 현실의 제약, 통로의 지배와 구조의 변화, 질서의 통제와 다극화된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5천년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형태를 바꾸어 현재 속에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 해석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 이란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의 기억이 현재의 국제정치와 충돌하는 장면이다.

이란 전쟁은 결국 총성과 미사일만의 전쟁이 아니다. 그것은 길을 둘러싼 전쟁이며, 질서를 둘러싼 전쟁이고, 기억을 둘러싼 전쟁이다. 누가 길을 열고 누가 길을 막는가, 누가 통로를 통제하고 누가 그 질서에 순응하는가, 누가 과거를 현실의 자산으로 바꾸고 누가 과거의 그림자에 스스로 갇히는가.
 
바로 이 물음들이 오늘의 이란을 읽는 핵심이다. 페르시아는 오랜 세월 길을 지배했고, 길을 통해 세계를 상대했다. 오늘의 이란도 그 오래된 습속 위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쥐고 세계와 협상하며, 때로 위협하고 때로 버티고, 때로 시간을 번다. 그러나 승패는 단지 강한 자의 몫이 아니다. 오래 버티는 자, 흐름을 읽는 자, 길의 법을 아는 자가 결국 구조를 바꾼다. 이란의 5000년 역사는 바로 그 사실을 오늘의 세계에 다시 묻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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