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은 현물가격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등장했다. 기존에는 선물 가격을 기초로 한 ETF만 존재했지만, 현물 기반 ETF가 출시되면서 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은 투자가 본격적으로 가능해졌다. 금에 이어 은까지 현물 ETF가 등장하면서 연금 포트폴리오 트렌드에 변화가 나타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하나자산운용은 이날 국제 은 현물가격을 비교지수로 하는 ‘1Q 은액티브 ETF’를 상장했다. 해당 상품은 해외에 상장된 은 현물 ETF와 상장지수 원자재(ETC) 등을 편입하는 재간접 구조로 운용된다. 뉴욕과 런던 시장의 은 현물 가격을 혼합한 지수를 기초로 글로벌 은 가격 흐름을 반영하면서 환차익까지 함께 추구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이번 상품은 기존에 출시됐던 은 선물 ETF와 구조적으로 차별화된다. 선물형 상품의 경우 만기가 도래할 경우 차월물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롤오버 비용이 수익률을 일부 훼손할 수 있지만 현물 기반 ETF는 이 같은 비용 부담이 없다. 기초자산 가격을 보다 정밀하게 추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인 장기 투자 수단이 될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연금 계좌 편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해당 ETF는 퇴직연금(DC·IRP) 계좌에서 위험자산 한도인 70% 범위 내에서 투자할 수 있으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연금저축 계좌에서는 최대 100%까지 편입이 가능하다. 기존 선물형 ETF가 연금 계좌에서 투자할 수 없었던 것에 비해 투자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금 현물 ETF 사례와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2021년 12월 상장한 ACE KRX 금현물 ETF는 이후 빠르게 성장하며 기존에 상장됐던 금 선물 ETF들을 앞질렀다. 현재는 순자산 4조7700억원으로 전체 ETF 상품 중 14번째로 규모가 큰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연금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안전자산인 금을 편입한 것이 성장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만큼 은 현물 ETF 역시 유사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은 현물 ETF의 등장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ETN보다 ETF를 선호하는 흐름이 뚜렷해진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은 투자상품 시장은 그간 상장지수증권(ETN)이 주도해왔다. ETN은 증권사가 발행하는 파생결합증권이다. 선물형 상품을 구조화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추적오차가 낮다는 장점이 있어 은과 같은 원자재 투자에서는 ETF보다 먼저 상품군이 형성됐다. 반면 ETF는 실제 자산을 편입해 운용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상 상품 설계와 운용 난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시장 진입이 늦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최근 은 가격이 조정을 받고 있다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은 현물 가격은 현재 온스당 70달러 선에서 등락하고 있다. 올해 1월 말 온스당 12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40% 넘게 하락한 수치다. 가격 하락 배경으로는 금리 환경 변화가 꼽힌다. 미·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인해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주요국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됐고, 귀금속 가격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가격 조정이 장기 투자 관점에서 진입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은은 금과 달리 산업 수요 비중이 높은 자산이다. 태양광 패널,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서 필수 소재로 활용되며 전체 수요의 절반 이상이 산업용에서 발생한다. 전기전도성과 열전도성이 가장 높은 금속이라는 점에서 향후 수요 확대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공급 제약도 장기적인 은 가격 상승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다. 신규 광산 개발이 지연되는 가운데 생산 증가도 제한적이어서 글로벌 은 시장은 수년째 공급 부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주요국이 은을 전략 자원으로 관리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영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인공지능(AI), 전기화, 에너지 전환 등 구조적 변화가 은의 산업적 중요도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다만 단기적으로는 투자심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성이 큰 구간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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