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불을 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신현송의 중앙은행 시험"

미국의 시사·금융 매체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는 지난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1914년 연방준비제도 출범 이후 역대 의장들을 대상으로 주식시장 수익률, 물가, 실업률, 금리 변화를 종합해 ‘최고와 최악의 중앙은행장’을 가려낸 것이다.

결과는 단순한 성적표가 아니었다. 1920년대 ‘광란의 20년’을 이끈 다니엘 크리싱어는 연평균 17%대 주가 상승률로 최고 평가를 받았지만, 그 이면에는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거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반대로 폴 볼커는 기준금리를 19%까지 끌어올리는 초강경 긴축으로 경기 침체를 감수했지만, 결국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잡아내며 중앙은행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재평가됐다. 

대공황기의 유진 마이어는 주가 폭락과 실업률 급등이라는 최악의 수치를 남겼지만, 그것은 개인의 실패라기보다 시대의 붕괴 속에서 내려진 선택의 결과였다. 

결국 중앙은행장은 결과로 평가되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환경이 만든다.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제약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판단력이다. 

이 질문이 지금 한국에서 다시 던져지고 있다. 이란 전쟁이 한 달째 이어지며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에너지와 공급망 충격은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각국 경제에는 다시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은행은 4월,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5월 새 수장을 맞는다. 이번 인사는 평시의 교체가 아니다. 전시 상황에서 위기 대응을 맡을 ‘소방수’를 세우는 일에 가깝다.  

전쟁 충격의 진원지가 아님에도 한국 금융시장은 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연초 대비 약 5% 상승해 엔·달러나 달러지수 상승폭을 크게 웃돌고 있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말 대비 53bp 상승해 3.9%까지 치솟았고, 3년 만기 회사채 금리 역시 70bp 올라 4%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 상승폭이 24.4bp 그친 것과 비교하면 상승 속도와 폭 모두 이례적이다. 이는 단순한 금리 변동이 아니라 한국 시장에 추가로 반영된 위험 프리미엄으로 해석된다.   

자금은 이미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이달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34조 원이 순유출됐고,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장중 81.99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도 60대 수준에서 높은 변동성이 이어지고 있다. 거래량은 코로나19 이후 최대 수준으로 치솟으며, 시장이 불안이 아닌 ‘패닉’에 가까운 국면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대응 여력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를 안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89%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2030년까지 80%로 낮추겠다는 목표가 추진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연간 증가율을 0~1%대로 억제해야 한다. 

이 조건에서 금리를 올리면 내수가 흔들리고, 내리면 환율과 자본 유출이 흔들린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비용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중앙은행의 정책 공간은 이미 크게 좁아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 총재로 지명된 신현송은 단순한 정책 책임자가 아니라 위기 대응의 중심에 서게 된다. 국제결제은행 통화경제국장을 지낸 그는 글로벌 금융과 한국 경제를 동시에 이해하는 드문 정책가로 평가된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전 국제결제은행 사무총장 역시 “현재의 충격을 가장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정책 성향은  매파적으로 평가된다. 그는 과거 연구에서 느슨한 통화정책이 자산 가격과 금융 시스템 리스크를 키운다고 지적하며, 인플레이션 대응에서는 선제적이고 강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공급 충격에 대해서는 금리로 기계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이를 관통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해왔다. 이는 단순한 긴축 일변도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정책을 정교하게 조정하는 접근이다. 

그의 과제는 명확하다. 금리를 얼마나 올리느냐가 아니라, 제한된 정책 수단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설계하느냐다. 환율 안정, 자본 유출 방어, 가계부채 관리, 경기 하방 압력 대응이라는 네 가지 과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상황에서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평가가 보여주듯, 역사적으로 좋은 중앙은행장은 항상 시장을 살린 사람이 아니었고, 나쁜 중앙은행장은 항상 금리를 올린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평가를 가른 것은 위기 속에서의 선택이었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위기는 단일 충격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시스템 리스크다. 이 상황에서 중앙은행장의 역할은 더 이상 금리를 조정하는 기술자에 머물지 않는다. 시장의 기대를 설계하고, 제한된 정책 공간 속에서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내는 설계자에 가깝다. 

중앙은행은 언제나 부족한 수단으로 과도한 역할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지금이 그 조건이 가장 극단적인 시기다. 

결국 신현송 체제의 성패는 하나로 귀결된다. 

주어진 선택지 속에서 무엇을 고르는가가 아니라, 새로운 선택지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는가.  평가는 그 지점에서 갈릴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이 2023년 2월 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은행·대한상공회의소 공동 세미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세미나는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한국 경제의 대응’을 주제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이 2023년 2월 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은행·대한상공회의소 공동 세미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세미나는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한국 경제의 대응’을 주제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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