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그레이스는 얼핏 전형적인 천재 캐릭터처럼 보인다.
극한의 우주에서 깨어나 중력과 속도를 계산하고, 자신이 태양계가 아닌 다른 공간에 와 있음을 추론해내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사고력을 지닌 인물인지를 증명한다. 공포에 압도돼 감정부터 무너지는 대신,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한다. 패닉 대신 실험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그를 단순한 영웅이나 천재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레이스는 세상을 구하는 인물인 동시에, 누구보다 평범한 생활인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만족하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며, 자기 몫의 안온함 안에서 살아간다. 세상을 뜯어고치겠다는 야심도, 거창한 명예욕도 없다. 말하자면 그는 거대한 역사보다 작은 일상에 더 어울리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인류의 명운이 걸린 임무 앞에서도 선뜻 나아가지 못한다. 이를 비겁함이라고 부르면 반쯤만 본 셈이다. 그는 두렵다. 죽고 싶지 않다. 영웅 서사에 스스로를 던질 만큼 고결하게 훈련된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보면, 그에게 인류는 너무 크고 추상적인 단어다. 구해야 한다는 명분은 이해해도, 그 명분이 곧 자기 생명을 내놓을 이유로 번역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듯 말이다. 그레이스는 특별히 비열해서 우주를 거부한 게 아니라,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거부한 것이다.
그의 심리를 관통하는 특징은 과학적 사고다. 우주에서 눈을 뜬 그레이스가 물체 낙하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는 장면은 과학의 본질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험과 실패, 끝없는 도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레이스는 극한의 상황에서조차 감상에 빠져 자신을 소비하지 않는다. 일단 받아들이고, 그다음 해야 할 일을 찾는다. 그레이스에게 과학은 직업적 능력이기 전에, 공포를 견디는 방식이다. 무너지는 대신 측정하고, 절망하는 대신 문제를 쪼갠다. 사고가 곧 생존 기술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더 깊어지는 지점은 그런 그레이스조차 과학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를 끝내 바꾸는 건 계산이 아니라 관계다. 바로 로키다.
로키와의 만남 이후 그레이스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두 사람의 관계가 감동적인 이유는 종족이 다르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결핍돼 있던 것을 건넨다. 과학자와 공학자, 사고와 실행, 설명과 제작, 언어와 감각이 맞물리며 비로소 무대가 완성된다. 각자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함께 풀어간다는 점에서, 이 관계는 우정을 넘어선 범우주적 협업의 은유에 가깝다.
더 중요한 건 정서다. 그레이스는 로키를 통해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반대로 그 역시 로키 없이는 버틸 수 없음을 깨닫는다. 영화 속 자축 파티 장면이 뭉클한 이유다. 인간의 지식이 담긴 노트북, 지구 모양의 뜨개 주머니, "날 기억하라고"라는 말, 그리고 "나한테 다 줬어"라는 대답. 여기서 오가는 건 물건이 아니다. 외로움을 덜어준 시간, 살아야 할 이유, 나를 이해해주는 존재의 출현이다. 그레이스가 로키에게 받은 것은 선물이 아니라 변화된 자신이다.
이 지점에서 그의 선택은 완전히 달라진다. 처음의 그레이스가 인류를 위해 목숨 걸기를 주저했다면, 후반의 그레이스는 로키를 위해 돌아간다. 이 변화는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매우 인간적이다. 사람은 추상적 대의보다 구체적 얼굴 앞에서 더 많이 변한다. '수십억 명의 인류'보다 '한 명의 친구'가 더 강력한 윤리의 동기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레이스는 로키를 통해 비로소 인류를 사랑하는 방식까지 배운다. 거대한 인류애가 먼저 있었던 게 아니다. 단 한 존재와의 관계가 생긴 뒤에야, 자신을 넘어서는 선택을 해낸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전형적인 영웅과는 다르다. 처음부터 숭고한 사람이 아니다. 도망치고 싶어 하고, 망설이고, 무섭고, 자기 안위를 먼저 생각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관객은 그를 믿게 된다. 완벽해서 감동적인 게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 조금씩 나아가기 때문에 감동적이다.
그레이스라는 이름은 의미심장하다. 'Grace'는 은총, 은혜를 뜻한다. 이 이름을 상징적으로 읽자면, 그는 처음부터 영웅적 자질을 타고난 존재라기보다 관계 속에서 어떤 은총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사람에 가깝다. 로키에게 그는 구원이고, 로키는 그에게도 구원이다. 그레이스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구하는 인물이 아니라, 서로를 살게 만드는 관계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능력보다도 변화의 방식, 즉 '주고받는 은혜'에 더 가깝다.
결국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특별한 이유는 우주와 과학의 스케일 속에 가장 인간적인 질문을 숨겨뒀기 때문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이 영화는 특수한 우주비행사의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모든 사람이 겪는 실존의 문제를 SF적으로 투사한 작품이다. 외로움, 책임 회피, 두려움, 연결의 필요,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달라지는 마음. 그레이스는 우주에서 문제를 푸는 과학자이기 전에,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어가는 한 명의 인간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