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에서 AI로"...한·베 경제협력, 과학기술 전략동맹으로 축 이동

  • 데이터센터·베트남어 AI모델 구축 제안, 기업 참여 확대

베트남 과학기술부 부 하이 꽌 차관오른쪽과 최영삼 주베트남 한국대사 사진베트남 과학기술부 제공
베트남 과학기술부 부 하이 꽌 차관(오른쪽)과 최영삼 주베트남 한국대사 (사진=베트남 과학기술부 제공)
베트남과 한국이 양국 경제협력의 무게중심을 기존의 제조·무역 중심에서 과학기술과 전략기술 분야로 전격 이동하기로 했다. 단순한 정책 교류를 넘어 기업과 시장을 실질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구축하기로 뜻을 모으면서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이 양국 파트너십의 새로운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26일 베트남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하노이에서 부 하이 꽌 베트남 과학기술부 차관과 최영삼 주베트남 한국대사가 만나 과학기술 및 혁신 분야의 심층 협력 방향을 논의했다. 양측은 과학기술을 한·베트남 경제협력 전반의 중심에 두고 포괄적이고 입체적인 협력 구조를 만들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꽌 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과학기술 협력은 단순히 정책을 주고받는 수준을 넘어 기업과 경제의 실질적인 발전 수요와 직접 연결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양측 모두에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부 주도의 제도 정비를 넘어 민간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 창출로 협력의 성격을 전환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최 대사 역시 이에 화답하며 "협력 활동이 개별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양국 경제협력의 전체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며 "과학기술은 양국의 미래 발전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국 측은 이러한 과학기술 협력을 향후 열릴 대규모 경제 포럼과 직접 연계해 정책의 실효성을 극대화하자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했다.
최영삼 주한베트남 대사가 발언하는 모습 사진베트남 과학기술부 제공
회의에 참석한 최영삼 주베트남 한국대사가 발언하는 모습 [사진=베트남 과학기술부 제공]
◆ AI·데이터센터·디지털 전환... K-테크 기업 참여 확대

이번 회동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진 대목은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양측은 국가와 기업, 교육기관을 유기적으로 잇는 협력 모델을 강조하며 한국의 첨단 기술력과 베트남의 산업 고도화 수요를 결합하기로 했다. 한국은 구체적으로 ▲베트남 내 AI 데이터센터 구축 ▲베트남어 기반 전용 AI 모델 개발 ▲특수 전문 분야 맞춤형 AI 도입 ▲공공부문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 등에 한국의 대형 테크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달라고 요청했다.

최 대사는 "단순히 정책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베트남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한국의 선도적 기술 기업들이 직접 참여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꽌 차관은 행정기관이 촉진자이자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여 협력 사업이 원활히 추진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구개발(R&D) 협력의 상징인 한·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의 고도화도 논의됐다. VKIST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모델로 하는 베트남의 과학기술연구원이다. 특히 1단계 사업에서 약 3500만 달러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가 투입된 성공적인 협력 모델로 평가받는다. 양측은 앞으로 2단계 사업을 통해 연구 운영의 효율성을 높여 고급 인력 양성과 R&D 투자를 대폭 강화해 자생적인 혁신 거점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스타트업과 벤처 생태계의 교류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양측은 혁신 기업들의 시장 확대를 지원하기 위해 '베트남 기업 혁신 우수 인증 프로그램(BEIE)'을 공식 출범시켰다. 또한 베트남 측은 한국의 풍부한 벤처캐피털(VC) 운영 경험과 국가 펀드 관리 노하우를 공유해 달라고 요청하며 양국 스타트업 간의 투자 네트워킹과 VC 참여 확대를 제안했다.

◆ 제도적 걸림돌 제거와 제10차 과학기술공동위 준비

협력의 외연 확장과 함께 현장 기업들의 애로사항 해결을 위한 논의도 병행됐다. 한국 측은 현재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 현지에서 겪고 있는 시험기관 인증 갱신 절차의 복잡함과 수입 원자재 품질관리 규정 등의 장애 요인을 언급하며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국은 조만간 개최될 '제10차 한·베트남 과학기술공동위원회'에서 이번 논의 사항들을 구체적인 액션 플랜으로 확정하고 이행 체계를 정비할 예정이다. 여기에 한국 고위급 대표단의 베트남 방문 시기에 맞춰 대규모 과학기술 세미나를 개최하고 관련 분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번 회동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온 제조·무역 중심의 한·베트남 관계가 AI와 디지털 전환을 축으로 하는 첨단 기술 동맹으로 진화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측은 과학기술 협력을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닌 장기적 동반자 관계의 핵심 근간으로 삼겠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한국의 발전 경험과 베트남의 역동적인 성장 의지가 전략기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결합하면서, 양국의 경제 지도는 더욱 고도화된 기술 중심 구조로 재편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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