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 기본·원칙·상식] 차량 5부제, 단계적이고 유연한 설계로 대응해야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가 차량 5부제까지 검토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우려 속에 국내 원유의 70%가 이 구간을 통과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요 억제 수단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약 210일분의 비축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수급 차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문제는 ‘도입 자체’가 아니라 ‘어떤 원칙과 방식으로 접근하느냐’다.
 

과거 사례를 보면 정부가 민간까지 포함한 전면적 차량 운행 제한을 시행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가 마지막이다. 당시에는 홀짝제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강하게 억제했다. 반면 2008년과 2011년 고유가 시기에는 공공부문에만 5부제를 적용하고 민간에는 권고 수준에 그쳤다. 위기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현재 정부의 대응 체계 역시 단계적 구조를 전제로 한다. 기후·에너지 당국이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도입 여부를 결정하고, 지자체가 행정명령과 과태료 부과를 통해 집행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에너지 수급 ‘경보 단계’에 따라 조치가 달라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직은 관심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경보가 격상될 경우 매뉴얼에 따라 대응 수위도 높아지게 된다. 이는 곧 5부제가 ‘즉각 시행되는 정책’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준비된 카드’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은 5부제 찬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전 단계의 대응을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시키느냐다. 추가 원유 확보, 공급선 다변화, 공공부문 선제 절감, 기업 자율 감축 유도 등 ‘강제 이전 단계’의 정책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민간까지 포함한 강제 조치로 갈 가능성은 낮아진다. 위기 대응의 본질은 최후 수단을 쓰지 않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럼에도 상황이 악화돼 5부제가 불가피해진다면, 접근 방식은 달라야 한다. 일률적·전면적 규제가 아니라 단계적·선별적 적용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정부도 공공부문을 우선 적용 대상으로 보고 있고, 민간 확대는 사태 장기화 여부에 따라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생계형 차량과 물류를 보호하고, 지역·시간대별로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등 ‘유연한 설계’가 병행돼야 정책 저항을 줄일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예측 가능성과 신뢰다. 어떤 조건에서 정책이 강화되는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과 시장이 대비할 수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갑작스러운 규제는 협조보다 혼란을 낳는다. 위기일수록 정책은 단순해야 하고, 동시에 보완책은 촘촘해야 한다.
 

에너지 위기는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충격의 크기는 정책의 질에 따라 달라진다. 5부제는 준비해야 할 카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카드를 꺼내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만드는 일이다. 유연한 설계와 선제 대응, 그리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중요하다.

 

미국·이란 갈등 영향 국제 유가 상승 수입물가지수 8개월 연속 오름세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지난달 미국·이란 갈등으로 국제 유가가 오르자 우리나라 수입 제품의 전반적 가격 수준원화 환산 기준도 1 이상 높아졌다 한국은행이 17일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2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4539로 1월14374보다 11 상승했다 작년 7월 이후 8개월 연속 오름세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2026317
미국·이란 갈등 영향 국제 유가 상승, 수입물가지수 8개월 연속 오름세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지난달 미국·이란 갈등으로 국제 유가가 오르자 우리나라 수입 제품의 전반적 가격 수준(원화 환산 기준)도 1% 이상 높아졌다. 한국은행이 17일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2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45.39로, 1월(143.74)보다 1.1% 상승했다. 작년 7월 이후 8개월 연속 오름세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202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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