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보증 26조에도 이주비 경색…중소사업장 '직격탄'

  • 규제 강화·정책 공백에 이주비 위기 현실화

서울 서초구 구룡산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서울 서초구 구룡산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정비사업자금 보증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오히려 이주비 조달이 막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대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중소 정비사업장을 중심으로 사업 동력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HUG가 공급한 정비사업자금 대출 보증액은 26조1747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18조713억원) 대비 45%, 2023년(15조5608억원)과 비교하면 70%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사업장 수도 188곳으로 2016년(128곳) 이후 가장 많았다. 서울 정비구역도 2022년 11곳, 2023년 20곳, 2024년 26곳으로 늘어나며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하지만 정작 정비사업의 핵심 자금인 이주비 조달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HUG의 서울 이주비 대출 보증액은 2023년 약 1조8000억원에서 2024년 1조6000억원, 지난해에는 약 1조4000억원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정비사업 보증 규모가 급증한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해 ‘6·27’과 ‘10·15’ 대책을 통해 이주비 대출에도 1주택자 LTV 40%, 다주택자 LTV 0%, 대출 한도 6억원 규제를 적용하면서 이주비 조달 통로는 더욱 좁아졌다. 이주비는 조합원이 공사 기간 중 거주지를 옮기기 위해 필요한 자금으로, 적시에 마련되지 않으면 이주와 철거, 착공 등 사업 전 단계가 연쇄적으로 지연될 수 있다.

이주비 경색으로 인한 부담은 중·소규모 정비사업장에 집중되고 있다. 중랑구 면목동 한 모아타운 사업장은 전체 조합원 811명 가운데 36%가 다주택자로 분류돼 이들의 이주비 대출이 사실상 막혔다.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 역시 이주비 대출을 받지 못하는 조합원이 7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이주를 앞둔 정비구역 43곳 가운데 39곳(약 3만1000가구)이 해당 규제로 이주비 조달에 차질을 겪고 있다. 범위를 내년까지 확대하면 66개 사업장, 약 5만6000가구로 늘어난다.

대출 규제로 기본 이주비가 막힌 조합원들은 시공사 지급보증을 통한 추가 이주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사업장이 늘고 있다.

강남·한강벨트 등 핵심 정비사업지에서는 대형 건설사들이 이주비 조달 조건을 내세워 수주 경쟁에 나서는 모습이다. 용산구 용산정비창 1구역 수주전에서는 조합원당 최대 20억원의 이주비 공약이 등장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강남구 개포우성7차 재건축 조합에 이주비 LTV 150%를 제안하기도 했다.

반면 강북권 중소 사업장은 상황이 다르다. 최근 중랑구 면목동 한 모아타운 사업의 경우 높은 다주택자 비중을 이유로 시공사가 지급보증 불가 입장을 통보했다. 관악구 한 재개발 조합도 약 690억원 규모 추가 이주비 확보를 시공사와 협의 중이지만 계약상 의무 조항이 없어 결론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HUG의 정비사업자금 보증료 수입은 2012년 30억원에서 2025년 2778억원으로 13년 만에 93배 증가했다. 전체 HUG 보증료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1%에서 23%로 뛰었다. 보증 사업장과 잔액이 2년 만에 70% 급증한 상황에서 HUG 역시 한정된 도시기금 예산으로 사업성이 낮은 사업장까지 추가 보증을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랑구의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강남 등 핵심 사업장을 제외하면 시공사가 추가 이주비 대출 협상에 적극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추가 이주비 대출은 시공사가 신용보강 부담을 떠안는 구조여서 중소 사업장일수록 협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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