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영화 이야기 9 | 인간·문화·자연]영화 「왕과 사는 남자」 : 태백산 산신령으로 되살아난 단종, 민초의 기억 속 '대왕'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극장 안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은 단지 서사의 힘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끝내 지켜내지 못한 한 소년 임금, 단종을 다시 불러내는 집단적 기억의 작동이다.


영화의 초반, 궁궐의 차가운 돌바닥 위를 비추는 카메라는 어린 임금의 눈을 오래 응시한다. 정통성의 곧은 선 위에 서 있던 아이. 그는 세종대왕의 적장손이자 세종의 맏아들 문종의 유일한 외아들이다. 혈통으로만 보면 조선 왕통의 가장 또렷한 계승자였다. 그러나 정치란 혈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숙부 세조의 결단은 국가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었고, 그 이면에서 한 소년의 삶은 무너졌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사진쇼박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사진=쇼박스]


상왕으로 물러난 뒤 밤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영화는 대사를 절제한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권력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승자의 기록만이 역사인가. 관객은 스크린 앞에서 그 질문을 함께 짊어진다.


영월 유배 장면은 특히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강물이 감싸 흐르는 청령포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폐위된 임금은 더 이상 왕좌의 주인이 아니다. 그는 한 인간으로 서 있다. 모래밭 위에 홀로 앉아 먼 산을 바라보는 장면은 권력의 상징을 모두 벗겨낸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매 주말이면 이곳에 수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가족 단위 방문객과 젊은 연인들, 역사 기행을 떠난 학생들까지. 강을 건너 들어가는 그 길은 이제 단순한 유배지가 아니라 정의를 되묻는 순례의 공간이 되었다.


영월의 장릉 또한 마찬가지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단종의 능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영화의 흥행 이후 주말마다 장릉을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사람들은 비석 앞에 서서 오래 머문다. 어린 임금이 잠든 자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공간은 숙연해진다. 능역의 바람은 가볍지 않다. 그 바람 속에서 우리는 한 시대의 비극을 마주한다.


그러나 단종의 이야기는 장릉에서 멈추지 않는다. 민간 전승은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백마를 탄 단종’ 설화다. 머루와 다래를 따서 바치던 한 백성이 길에서 백마를 탄 단종을 만났고, 그가 “나는 태백산으로 간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얼마 뒤 단종이 승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선 귀환의 선언처럼 들린다. 전승은 더 구체적이다. 단종의 혼은 영월의 주산인 봉래산을 거쳐, 단종 복위 운동이 일어났던 순흥의 소백산을 지나 마침내 태백산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이 길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을 지키려 했던 충절과 복위의 꿈이 겹쳐진 상징의 길이다.


봉래산은 사육신의 충절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 공간으로도 전해진다. 산은 침묵하지만 역사는 그 침묵 속에서 오래 울린다.


태백산 능선에 자리한 단종비각에는 ‘조선국 태백산 단종대왕지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글씨는 오대산 월정사 조실이었던 탄허 스님의 친필로 전해진다. ‘단종대왕’이라는 네 글자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조선 왕조의 공식 기억 속에서 ‘대왕’의 칭호는 주로 세종에게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민초의 기억은 다르다. 억울하게 죽어간 임금을 대왕으로 부르는 마음. 제도의 언어와 감정의 언어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세종대왕이 창조의 군주라면 단종은 상처의 군주다. 세종이 훈민정음으로 백성을 밝힌 빛이라면 단종은 정의를 일깨우는 그림자다. 빛과 그림자는 서로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그래서 두 왕은 전혀 다른 자리에서 민초의 가슴에 함께 남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이 역사적 층위를 감각적으로 되살린다. 궁궐의 어둠, 청령포의 물결, 장릉의 바람, 그리고 태백산의 능선. 스크린은 인간·문화·자연을 한 인물 안에서 엮어낸다.


관객은 눈물을 흘리며 극장을 나와 실제 역사 공간으로 향한다. 청령포와 장릉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행위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다시 묻는다. 정의는 패배하는가. 아니면 기억 속에서 승리하는가.


권좌에서는 밀려났으나 기억 속에서는 폐위되지 않은 왕. 장릉에 잠들어 있으되 태백산 능선 위에서 산신령처럼 되살아나는 이름.


단종.


그는 조선의 역사 속에 기록된 군주이자, 대한민국 민초들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대왕’으로 살아 있는 이름이다.

그래서 단종의 이야기는 끝난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를 위해 권력을 쓰는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